삼성물산 합병관련 군색한 해명 연일 쏟아내…국민 불신 씻어낼 시스템 마련 서둘러야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거든 것을 두고 제기되는 의혹과 비판에 대해 연일 해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시시콜콜한 언론 보도내용에까지 다급하게 해명자료를 내놓는 것을 보면 안쓰러운 느낌이 들 정도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해명이라고 내놓은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적법하게 산출됐다. 의결권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투자위원회 표결만으로 합병에 찬성 입장을 정한 것도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다. 합병에 따른 불리함은 바이오 사업부문과 지주회사로서의 신사업 진출 기반 확대 등 합병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로 상쇄할 것으로 판단했다.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것도 공식적인 업무로 일반적인 검토과정이다.”

 

물론 제기된 의혹과 관련, 사실관계가 명확히 잘못됐다면 바로 잡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해명은 사실관계를 바로 잡기는 커녕 되레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오도하는 구차한 변명으로 보일 뿐이다. 차후로도 삼성물산 합병 건과 유사한 사안이 있을 때 언제든 이번과 똑같이 행동할 것인지 묻고 싶다.

 

국민연금은 합병비율이 적법하게 산정되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합병비율 산정에 앞서 삼성물산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트린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합병후 시너지 효과로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산정된 합병비율이 상쇄될 수 있다는 해명도 수긍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투자위원회만으로 찬성 의결권 행사를 결정한 것도 국민연금이 이런 중대 사안을 다루는 그동안의 절차에 견줘 의문이 제기되는게 이상할게 없다.

 

홍 전본부장과 이 부회장의 만남도 그렇게 떳떳하다면 당당하고 공개적으로 못 할게 없는데 왜 쉬쉬하고 만나 두고 두고 의혹과 잡음이 나게 만드는지 납득이 안된다. 

 

더구나 이 만남에 함께 나갔던 국민연금 관계자가 최근 국회 국조특위에서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책정된 합병비율을 조정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힌 것은 국민연금도 합병비율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이 삼성물산 합병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것과 강면욱 현 자산운용본부장의 인선 과정을 둘러싼 의혹 등에 대한 해명도 군색하기 짝이 없다. 

 

특히 강본부장의 경우 대구 계성고와 성균관대 1년 선배인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인선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다수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올 2월 기금이사로 취임하기전 그가 대표를 맡고 있던 메리츠자산운용의 펀드운용실적이 어떠했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며 ​“500조원의 국민연금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적임자로서 자질을 갖춘 것으로 파악됐다”고 인선 이유를 내세우고 있으니 어리둥절하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임의로 탈퇴해 다른 연금보험으로 갈아탈 수 있는게 아니다. 법으로 가입이 강제돼 있어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국민이 가입자로 남아 세금처럼 꼼짝없이 연금보험료를 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만큼 안정적인 운용과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뜩이나 저출산 고령화로 연금 보험료를 낼 부양세대는 줄고 부양 받아야할 노령세대는 늘어 연금 고갈이 우려되는 터다. 보험료율이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결국 기금 고갈을 피할 수 없다. 오는 2044년에는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게 국민연금추계위의 예측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런 악몽이 이보다 2년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9월 내놓기도 했다.

 

기금운용을 책임진 사람들이 신의 성실하게 자산을 관리해도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판이다. 하물며 특정 재벌의 주머니를 채워주느라 기금을 마구 훼손한다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뻔하다. 연금 기금은 더 빨리 동나게 되고, 그 피해는 우리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국민의 노후는 그만큼 더 암담해질 수 밖에 없다.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국민연금 책임자들과 그들의 행태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국민연금이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지금 피부에 와닿지 않는 변명이나 하며 시간을 보낼 때가 결코 아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맡아 관리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각종 의혹을 만든 당사자로서 재산을 맡긴 국민에게 불안감을 갖게 한 것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 사죄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다시는 이런 의혹을 낳을 여지가 없도록 내부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거대 기관투자가로서 위탁자의 돈을 내 돈처럼 다루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키우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정부도 뒷짐지고 있어선 결코 안된다.

 

기금 운용 책임자 인선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국민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정권이나 재벌의 입김에서 벗어나 기금운용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제 국민연금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두번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신뢰를 잃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저항에 부딪쳐 결국 존망의 위기에 처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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