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갖다 바친 총수들 대가성 정황 또렷

지난 9월28일 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공직자는 담당하고 있는 직무와 관련있는 사람에게 금전적 접대를 받으면 안된다.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부조 10만원을 초과해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직무 관련성이 깊은 학생과 교사는 스승의 날 카네이션도 주고 받을 수 없게 됐다. 논란이 많았지만 언론인도 포함됐다. 자칫 친구와 술 한잔 하거나 유관기관 관계자와 식사도 조심스러워졌다. 김영란 법 위반행위 신고시 포상금까지 주면서 소위 란파라치까지 등장했다.

이런 심리 탓에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법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세간에서는 식사와 술자리를 3만원 이내로 제한한 김영란법으로 외식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일부 식당에서는 2만9900원 짜리 메뉴를 선보이며 김영란법에 대비해 고객 유치에 나섰다. 선물세트 판매가 줄면서 한우, 과일 등 농가도 어느정도 타격을 입고 울상이었다. 

온 국민을 단돈 3만원에 벌벌 떨게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어떠했나.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인물과 함께 정체가 모호한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을 설립하고 돈을 끌어모았다. 업무 관련성이 없는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면세사업권, 총수사면 등 대가성이 짙은 기업들도 줄줄이 연루돼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오찬을 겸한 공식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7명이 따로 면담 자리를 가졌다. 박근혜 정부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으로 기업에 774억원을 낼 것을 요구하고 청년희망펀드에 800억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에 210억원 등 총 2,164억원을 요구했다. 또 창조경제혁신센터 15곳을 대기업이 떠맡도록 할당했다.

SK나 롯데, 포스코 같은 약점 있는 기업은 심지어 업무 관련성이 짙다. 올해 2월 박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엔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이 참석했다. 이후 SK는 80억원을, 롯데는 75억원을 각각 요청 받았고 실제로 롯데는 이 중 70억원을 냈다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기 직전 돌려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통령 독대와 기금 출연 직후인 지난 4월 관세청은 대기업 3곳에 시내면세점 특허 추가를 발표했다. 이에 박 대통령 등이 두 기업에 추가 지원금을 요구하는 대가로 '면세점 카드'를 활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연루기업에 김영란법보다 양형이 높은 형법상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김영란법으로만 처벌한다고 해도 법안대상자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수수금액의 2~5배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징역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의 대면 조사를 피하고 있다. 기업들은 모두 현 정권의 실세 앞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부적절한 면담자리와 금전오고가던 때에 그들은 3만원에 전전긍긍하던 국민들을 한번이라도 떠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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