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위원장 사퇴·최순실 독대 의혹 집중추궁 예정…“조 회장 입 열면 파장 클 것”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올 가을 내내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여파가 조 회장 어깨를 짓눌렀다. 지난 10월4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법정관리를 자초한 무책임한 경영자”라는 뼈아픈 질책을 듣기도 했다.

그랬던 조 회장이 다시 의원들 앞에 선다.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지난 21일 조 회장을 다음달 5일부터 시작되는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두 달 전과 입장이 다르다. 조 회장은 가해자 아닌 최순실씨 눈 밖에 난 피해자로서 증언할 가능성이 높다. 의원들은 조 회장 증언을 비선실세 악행을 폭로하는 지렛대로 삼을 전망이다.

국조특위는 조 회장의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배경에 주목한다. 조 회장은 지난 5월 3일, 한진해운 경영난을 이유로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2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조 회장 후임자 역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 회장 사임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양호 위원장이 한진그룹의 긴급한 현안 수습을 위해 그룹 경영에 복귀하려고 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조 회장 개인 사정’으로 사임이유를 돌렸다.

조 회장은 조직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기 4일 전인 지난 4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경제사절단 불참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 회장이 박근혜 정부 외교·스포츠 행사 주연에서 조연으로 전락하자,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한진해운에 발목을 잡혔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해운사 경영난 탓에 조 회장 개인사(事)까지 꼬였다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뉴스1
그러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조 회장의 연이은 악재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 회장이 최순실씨를 비롯한 비선실세들과 마찰을 빚은 탓에 각종 외압을 받았다는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직 사퇴를 넘어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까지 비선실세가 관여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0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양호 회장이 권력형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K스포츠재단에 출연을 거부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했다. 미르재단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SK·롯데·한화는 미르재단에 각각 125억원, 68억원, 28억원, 15억원의 출연금을 냈지만, 대한항공은 이들보다 적은 10억원을 미르재단에 출연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순실씨 측이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사업에서) 스위스 누슬리를 수주하라고 압력을 행사했고 조 회장은 '스위스의 단가가 너무 비싸다. 경비 절감을 위해 한국의 대림도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았다“며 “조양호 회장 사퇴 종용 사건은 한 마디로 불편하고 말을 듣지 않아서 자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스위스 건설회사 누슬리는 올해 3월 초 최순실씨 소유로 알려진 더블루K와 협약을 맺고 동계올림픽 시설 공사를 수주하려 했다. 당시 조 회장은 누슬리에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 공사를 맡기라는 청와대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조 회장이 이를 거부했다. 이 탓에 ‘최순실 라인’으로 불리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압력으로 조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추측이 나온다.

앞서 11월3일 조 회장은 서울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직위원장직 사퇴 전) 김 전 장관을 만난 것은 맞다”며 “당시 담당자였으니까. 그래서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사퇴에 있어 비선실세 개입이 있었냐는 질문에 "기사에 나온 것이 90%는 맞다"며 사실상 외압이 있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된 최순실씨 독대 여부에 대해선 입장발표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여·야 의원들은 조 회장이 국조특위에서 ‘최순실 스캔들’의 전말을 털어놓길 기대하고 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조특위에서 조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비선실세의 외압 사실을 고백할 경우, 지금까지의 추측성 보도를 뛰어넘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여·야 의원들은 이를 발판삼아 다른 재벌 총수들의 ‘도미노식 고백’을 기대하고 있다.

22일 한 새누리당 의원은 “비선실세는 이미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 검찰 조사만으로도 최순실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의 횡포는 드러난 상황”이라며 “다만 일방적인 수사결과를 보고 듣는 것과, 실제 피해자가 직접 증언하는 것은 파급력부터가 다르다. 조양호 회장이 지금까지 나온 의혹을 전 국민 앞에서 인정한다면 다른 총수들도 이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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