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발주 물량 확대에 미국도 인프라 투자 확대 예상…해외수주 부진 속 '단비'

22일 기준 국가, 공종별 해외건설 수주액 / 사진 및 자료= GS건설, 해외건설협회

 

세계 각국에서 인프라 투자 확대조짐이 보이고 있다. 신흥국의 경제성장, 미국 정책기조 변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발족 때문이다. 저유가로 중동 지역 발주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 건설업계 입장에서 '가뭄의 단비'다. 반면 세계시장의 불안정성 확대로 인프라 투자가 무작정 늘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신흥국인 베트남‧싱가포르‧필리핀‧말레이시아에서 국내 건설사가 수주한 누적 금액은 79억 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71억 달러) 대비 12% 늘어난 수치다. 특히 건설업계가 이들 국가에서 수주한 금액은 전체 국가 군 중 3~6위를 기록했다. 석유수출기구(OPEC)에서 수주한 금액이 같은 기간 172억 달러에서 94억 달러로 반토막 난 것과 대조된다. 

이들 국가에서 특히 토목을 비롯한 인프라 수주가 늘었다. 신흥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인프라 발주가 늘었기 때문이다. 인프라 건설에 해당하는 토목 공종의 올해 해외 수주액은 52억 달러로 전년 동기(68억 달러) 대비 23.7% 줄었다. GS건설과 현대건설, 쌍용건설이 수주한 중동 지역 발주물량 비중이 높은 산업설비(플랜트) 수주액이 같은 기간 51.67% 감소하며 반토막 난 것과 대비된다. 저유가로 해외수주 금액이 23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1% 줄어든 상황에서 인프라가 건설업계의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건설업계는 이들 국가의 인프라 개발 방식도 발전시키려 한다. EPC(설계, 조달, 시공) 형태의 도급사업에서 더 나아가 투자개발형 사업도 모색하고 있다. 사업제안부터 시작해 기획 및 자금조달 등 개발계획 수립, 시공,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업모델이다. 일반 도급공사 대비 리스크가 높지만 수익률이 높은 장점이 있다.

각국의 인프라 투자전망이 긍정적인 것도 건설업계에 고무적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시장을 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임기 10년 간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을 밝혔다. 노후 인프라 개량 및 신규 인프라 확대로 국내 건설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김원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연구원은 9일 발간된 ‘미국 신행정부의 향후 정책방향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예고한 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의 관련 정부조달 시장 참여를 늘릴 필요가 있다”며 국내 건설사의 미국 인프라 시장참여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부 역시 미 인프라 시장 확대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22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수출입은행에서 국토교통부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한 ‘제3차 해외 인프라 수주 및 투자지원 협의회’에서 “(미 대선에 따른) 새로운 기회요인에 대한 분석과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국내 건설사의 미국 인프라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기업과 파트너십 및 합작법인 설립 등 현지화 전략 ▲해외건설인프라 관련 펀드를 통한 금융지원 ▲고부가가치 부문 경쟁력 제고 방안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인프라수요는 아시아에서도 증가할 전망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09년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 인프라시설 투자수요가 매년 73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한 아시아 인프라 확충 및 육‧해상을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이 올 1월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연계돼 인프라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동 발주처를 두고 업계에서 ‘장사치’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다른 해외 발주처보다 유독 더 원가절감을 독촉하는 등 손해 볼 짓을 절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유가와 함께 (중동현장) 업황이 악화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며 “업계 차원에서 중동 비중을 줄이고 인프라 시장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개발형 사업도 시험하면서 중동 건설현장 대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인프라 시장 참여기회가 확대되는 것은 환영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인프라 시장 확대 가능성에 회의적인 의견도 존재한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정부와 업계 노력에도 미국 인프라 시장 참여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가장 큰 영향이다. 트럼프는 공공연히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더라도 자국산 원자재 및 국내 기업 참여를 독려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업의 인프라 사업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엔지니어링 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는 시공능력이 강점이다. 다만 선진국 시장 진입을 위해선 엔지니어링 역량 등 기술력 강화가 필수다”라며 “시장이 확대돼도 참여 가능성은 별개 사항”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인프라 투자확대 기조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은 ▲통화가치 ▲증시 ▲채권시장의 ‘트리픅 약세’를 경험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한 신흥국 경상수지 악화 우려, 트럼프 재정확장 정책에 따른 성장률 진작과 물가상승률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자금이 이들 국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경제성장률 저하로 신흥국 정부의 재정지출 여력이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신흥국의 재정지출 축소는 건설사의 인프라 수주 위축을 부를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흥국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축소하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관련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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