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 6개 분사·대우조선 자본확충…“수주와 지원 평가시스템 개선 없이 생존 불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수주가뭄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양사 대책을 두고 노사와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사진은 울산 동구 방어진 인근 현대중공업 조선소. / 사진=박성의 기자

 

상전벽해(桑田碧海)다. 10년 전 세계 조선산업을 호령하며 가세를 불려가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분사와 감자를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인력과 시설 구조조정에도 조선 수주난이 심화된 탓이다.

양사의 유례없는 회생작업에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회사를 살린다는 명분아래 노사 주도권 추가 경영진에게 넘어가자 노조 불만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채권단과 회사가 ‘도려내기식’ 자구안에 집중할 경우, 조선업황이 회복되더라도 과거 위상을 되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현실적 수주목표라더니 이마저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수주절벽에 몰렸다. 수주난은 연초부터 예고돼 왔다. 조선업황이 지난해부터 바닥이다. 저유가로 해양플랜트 발주는 찾아보기 어렵고 중국의 저가 수주공세 속에 조선사 간 출혈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수주난은 예상보다 더 장기화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업계는 상반기 중 조선업황이 바닥을 치고 하반기 상승세를 탈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다. 프랑스 CMA CGM 등 대형 해운사들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예고하는 등 메머드급 프로젝트 물량이 이런 기대감 배경이 됐다.

지난 1월 한 조선사 간부는 수주목표 달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조선 빅3 수주목표는 매우 보수적으로 잡혔다. 업황을 고려한 매우 현실적인 목표로 달성도 수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개월이 지난 이 같은 회사 기대는 비현실이 됐다.

11월 현재 현대중공업은 올해 들어 지난 10월 말까지 총 62억달러를 수주했다. 현대중공업 그룹 내 조선 3사를 기준으로 10월 말까지 총 24척(현대중공업11척, 현대미포조선 5척, 현대삼호중공업 8척)을 수주했다. 당초 수주목표는 195억달러였다.

대우조선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우조선은 지난달까지 13억달러를 수주했다. 연초 108억달러로 잡은 수주목표를 지난 6월 62억달러로 낮췄고 최근 35억 달러까지 내렸다. 수주목표에 턱없이 못 미친다. 대우조선은 10월까지 유조선 6척, LNG선 2척, 특수선 3척 등 총 11척을 수주했다. 해양플랜트 수주는 전무하다.

◇ 몸집은 줄이고 채권단에 ‘백기투항’

가세가 기울자 현대중공업은 분사 카드를 빼들었다. 조선업황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 동안 변방에 밀려있던 비조선부문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세운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15일 기존 현대중공업을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로봇 ▲서비스 등 6개 회사로 분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4개 사업부인 조선해양(현대중공업),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건설기계(현대건설기계), 로봇투자(현대로보틱스)로 재편된다.

그린에너지와 서비스 사업은 현물출자 방식으로 새출발하고, 서비스 부문은 로봇·투자 사업부문에 귀속된다. 나머지 현대중공업 존속법인과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투자 사업부는 분할 후 재상장 된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분할로 현대중공업은 상반기 부채비율을 117%에서 100% 미만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며 "이는 동종업계 최상위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3분기에 1413억원의 영업손실로 조선 3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은 결국 채권단에 손을 내밀었다. 대우조선 노사는 17일 '경영정상화를 위한 추가 노사확인서'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제출했다. 모든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노조는 감원 계획 등에 맞서 파업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10일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대해 총 3조2000억원 규모의 자본확충을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단, 전제조건으로 노조 무파업, 자구계획 동참 확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대우조선은 현재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완전자본잠식이란 자본이 모두 바닥나 자기자본이 ‘마이너스’로 접어든 것을 말한다. 선박 발주 자체가 불가능해 지고, 자본확충을 받지 못하면 내년 3월 증시에서 퇴출된다.

대우조선이 동의서를 기한 내 제출하며 기업 존폐 위기는 넘겼다. 산업은행은 18일 오후 4시 예정된 이사회에서 보유 중인 대우조선 주식 약 6000만주 전부를 무상소각하는 감자를 의결할 예정이다. 대우조선에 내준 무담보 대출 1조8000억원도 자본으로 전환한다.

수출입은행도 대우조선 영구채 1조원을 대우조선 대출과 교환하기로 했다. 산업은행 외 주주들도 10대 1 감자를 단행한다. 대우조선 자본확충에 총 2조8000억원이 투입되면서 대우조선의 자기자본이 1조6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완전자본잠식으로 산정조차 되지 않던 부채비율은 약 900%로 낮아진다.

◇ ‘동족방뇨’식 대책으론 회생 불가능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회생작업을 둔 업계 의견은 분분하다. 사측은 “수주난에 대응하기 위한 체질 개선 작업”이라며 이 같은 몸집 축소 작업을 정당화하고 있다. 자구책에 따른 부작용을 점치기에 앞서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사운이 걸려있는 상황이다. 살아남아야 그 후 어떤 개혁이든 해낼 수 있는 것”이라며 “지금 자구책 하나하나를 오래 들여다 볼 형편이 못 된다. 아프더라도 빠르게 잘라내고 줄이고, 얻을 건 얻어낸 뒤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등 사업구조 다각화로 조선․해양 비중이 50% 미만이기 때문에 조선업종 불황에 따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다”면서도 “수주급감에 따른 일감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 스스로 최선을 다해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 같은 사측 주장을 불신한다. 외부에서 자금을 얻고, 회사를 쪼개는 것만으로는 수주급감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조선사를 지원하고 자구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하는 것 역시 허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주주총회 전까지 분사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소식지를 통해 노조는 "회사가 사업 분할 문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과의례 형식으로 노조에 통보했다"며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하게 떠돌던 사업부 분리를 이사회를 통해 밀어붙인 경영진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18, 23, 25일 조합원 전체 파업한 뒤 전면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대우조선 노조 집행부는 회사가 침몰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더 이상 투쟁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일부 노조원들은 파업권 반납은 곧 노조 해체를 의미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선사들이 말로만 체질개선을 외칠 뿐, 정작 자구안 대부분이 채권단 지원과 비용 절감 등 근시안적 대책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조선사 금융지원에 앞서 사업성 평가를 정확히 하고, 회사는 수주 수익성 예측 및 평가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조선사들이 계약 건수 올리기에만 급급한 채, 수익성 등에 대한 명확한 평가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또 한 번 이런 문제가 재발한다면 그때는 조선사 뿐만 아니라 지원에 나선 금융권도 끝”이라며 “조선사가 금융지원을 요청할 경우 사업성을 철저히 평가해야 한다. 조선사가 (적자를 유발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는 계약을 할 경우 지원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