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결과물에 대한 규명 필요…사회기여·행복·유산 사이에서 균형 잡아야

 

처음엔 마더 테레사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허리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며 자신의 몸을 가장 낮은 데로 낮추어 인류애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사람, 모름지기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마더 테레사의 일생은 실망스럽다. 인류에게 남긴 족적을 제외한 그의 삶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성공은 하나의 잣대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처음엔 커다란 성취를 이룬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립(而立)에 이르지 못한 풋풋한 나이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해 혁명에 불을 지핀 카를 마르크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세상을 뒤집고자 하는 열망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사상을 잉태한 위대함은 변하지 않는 가치여서 위대하다. "그래! 성공은 성취를 남기는 것이지"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는 그의 마지막 10년을 자신의 말대로 ‘만성적인 정신적 침체’에 빠져 살았다.

돌아보니 모두 성공이 아니다. 하워드 스티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일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에서 모름지기 성공은 성취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여, 행복, 유산 등 네 가지로 판단할 수 있는 가치라고 말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는 기여와 스스로의 행복, 그리고 후대에 남기는 것을 포함해야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업도 성공 앞에 따라오는 ‘성취’, ‘달성’과 같은 거창한 이념들을 그만 떼어 버렸으면 좋겠다.

애초부터 기업이 사용하는 표현은 마뜩잖았다. ‘목표’이라는 타이들만 붙으면 ‘달성’이라는 정신력으로 성취하고야마는 도전정신이 신통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기둥이 되어야 할 기업이 가시적인 결과물만을 일구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다니, 우리가 겨울 지나면 나무뿌리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60년대에 살고 있는가. 도전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것은 성공에 대한 개념적 빈곤을 여실히 증명하는 국내 기업의 고질병이다.

너무 부지런한 것도 때로는 문제다. 여태 열심히 달리기만 해 온 한 삼성맨이 있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노력이 성과로 드러나는 순간이 좋았다. 돌아보니 100일 중 야근하지 않은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혔다. 가족과 보낸 여가에 자신은 언제나 땅에 등을 대고 누운 채였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의 행복,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순수한 기쁨마저 성공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해 돌아보니 새삼 기분이 나빠진다. 성취만으로 점철된 성공은 허구에 가깝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지만, 도전 이후 창출되는 성과에 대한 규명도 필요하다. 성취라는 성과만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이다. 기업가들은 특히 성취라는 성과에 매몰돼 성공을 오해하고 있다.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에 자신이 미치는 기여도와 행복, 그리고 유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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