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환경 뛰어 넘어 혁신이 창조하는 가치

커피와 초콜릿에 관한 한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특이한 나라다. 먼저 이탈리아는 커피와 별 관련이 없다. 커피 원산지도 아니고 유명 커피 원두는커녕 커피 콩 한 톨 생산하지 않는다. 커피 가공기술이 특별하지도 않다. 하지만 세계가 즐겨 마시는 커피 이름은 모두 이탈리아어다.

 

에스프레소부터 카페 라테, 카푸치노, 마키아토까지, 심지어 미국인이 마시는 커피도 영어 이름이 아닌 아메리카노다. 이유가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에스프레소 때문이다. 앞서 나열한 커피는 모두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만든다. 카페 라테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은 것이고 카푸치노는 거품우유를 섞었더니 색깔이 이탈리아 수도승이 입는 옷인 카푸친의 색과 비슷해졌다고 카푸치노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키아토는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섞으니 우유가 얼룩진 것처럼 보였기에 얼룩이 묻었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마키아토가 됐다.

 

커피 이름이 이렇게 이탈리아어 일색인 진짜 이유는 바로 에스프레소를 이탈리아 기술자가 만들어 퍼트렸기 때문이다. 고압의 수증기를 통과시켜 원두에서 커피를 빠르게 추출하는 방식의 에스프레소 기계는 1884년 안젤로 모리온도라는 기술자가 처음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17년 후인 1901년 역시 밀라노 출신의 이탈리아 기술자, 루이지 베제라가 개선된 에스프레소 기계를 상용화해 퍼트렸다.

 

이후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하는 다양한 커피가 만들어졌고 덕분에 커피 이름은 이탈리아어 일색이 됐다.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커피와 이탈리아의 관계처럼 스위스 역시 역사적으로 초콜릿과는 별 관련이 없는 나라다. 심지어 초콜릿이 전해진 역사도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는 스위스가 가장 짧다. 옛날에는 산골 나라였던 만큼 값비싼 사치품인 초콜릿은 감히 먹을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다.  

 

이랬던 스위스가 지금은 세계적인 초콜릿 강국으로 유명하다. 린트, 슈사드, 토블러, 네슬레 등등 유명 초콜릿 브랜드가 즐비하다. 밀크 초콜릿의 경우는 스위스 초콜릿 제조업체가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초콜릿 원두인 카카오 콩 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세계 초콜릿 시장을 장악했을까?

 

여기에는 초콜릿과는 전혀 관련 없는 우유와 다니엘 피터, 그리고 앙리 네슬레라는 두 기술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프스 산악국가인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낙농업이 발달했기에 질 좋은 우유가 풍부했다. 스위스의 초콜릿 제조업자인 다니엘 피터가 풍부한 우유를 카카오에 섞어 신제품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다 마침 이웃에 사는 앙리 네슬레라는 화학자의 도움을 받게 됐다. 네슬레는 이 무렵 유아용 분유개발에 성공했기에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카카오버터에 우유를 섞어 달콤하고 부드러운 밀크 초콜릿을 만들어냈다. 이때가 1875년이었다.     

 

카카오에 우유를 더하면서 초콜릿의 쓴 맛이 줄었고 덕분에 밀크 초콜릿은 대박 히트상품이 됐다. 또 우유를 혼합하면서 초콜릿 제조업자들은 값비싼 카카오의 비율을 줄일 수 있게 됐고 동시에 스위스 낙농업자들에게는 넘치는 우유 생산의 판로가 생겼다. 이렇게 스위스 밀크 초콜릿이 경쟁력을 갖추면서 그 결과 초콜릿과 전혀 관련 없는 스위스가 초콜릿 강국이 됐다.

 

그러고 보면 가치는 조건이 아닌 혁신이 만든다. 이탈리아 커피와 스위스 밀크 초콜릿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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