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번째 이야기

 

순실의 시대를 살며, 삶 속에 몇 개의 순실이 들어와 있는지 세어 보다 새삼 놀랐습니다. 미디어스타트업을 준비해온 지난 4개월 광화문 창조경제센터에서 공간을 빌려 회의를 열어왔습니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최순실씨가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진 문제의 ‘CREATIVE KOREA’ 조각은 옆건물에 있습니다. 매주 한 번씩 혜화동에 있는 콘텐츠코리아랩에서 스튜디오와 카메라 장비를 빌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이곳 역시 문화체육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한때 최순실의 기획으로 설립됐다고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창조경제 정책은 뭔가를 해보려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이자 공간입니다. 손바닥만한 사무실 찾기도 어려운 서울에서 창업그룹에게 무료로 도시 한복판의 회의시설도 빌려주고, 비싼 장비들도 예약만 하면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문구를 볼때마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책이 떠오릅니다)이 센터 벽에 걸려있는 이곳은 비유하자면 노량진 고시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공시생들이 얼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노량진을 떠나고 싶어하듯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창업자들에게도 투자와 밑천이 준비되면 떠날 채비를 하고 성공가도를 꿈꾸는 곳이니까요.

 

사진=youtube '어니언스' 페이지캡쳐

 

정치미디어 어니언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니언스는 정치를 일상으로 끌어오는 고리가 되고자 하는 매체입니다. 어렵게만 여겨지는 정치를 우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내고 취재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만듭니다. 박근혜게이트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영상콘텐츠도 창조경제센터에서 기획하고 제작했습니다. onion(양파)와 audience(독자, 공감)의 합성어인 어니언스(onience)는 불편한 일상을 까고 까서 그 속의 정치를 발견하고 독자에게 정치 논점을 제시하여 댓글토론장을 만듭니다. 

 

3주 전에 제작한 ‘쪽지예산은 김영란법에 안 걸려?’ 영상은 MC가 정치 토론을 유도합니다. 국정감사 당시 의원들이 먹었다던 도시락(2만원이 훨씬 넘는)에서 김영란법이라는 정치를 찾고 쪽지예산이 부정청탁으로 법 위반인지 아닌지를 독자에게 물음으로써 토론을 여는 식입니다. 최근에는 박근혜게이트에 대해 여당은 ‘거국중립내각’을, 야당은 ‘진상규명’을 먼저 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영상을 업로드했고 현재까지 독자 100여명이 논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치를 일상으로 끌어오는 겁니다.

 

영상으로 일상에서 정치를 말하는 사회를 꿈꾼다면, 탐사취재로 기성언론에선 보기 어려웠던 기획을 합니다. 4.13 총선 이후 당선된 국회의원들 선거비용을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3개월 동안 진행했고 기사뿐 아니라 게임과 검색사이트로도 구현했습니다. 한 달 동안 종로에서 뵌 노인들과 잔술집에서 술을 나눠 마시고 공원에서 장기도 두며 그들의 공간이 사라지는 이유를 장기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야마라고 부르는 기사주제와 마감시한에 자유로운 덕에 맥락을 알아가는 탐사취재가 가능했습니다. 

 

단지 좋은 일을 하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습니다. 정치미디어 어니언스는 특히 수익구조가 없다는 저널리즘 미디어이지만, 물꼬를 트고 생존을 넘어 성공한 스타트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니언스와 같은 정치미디어들이 많아지고 일상에서 정치무관심이 해소되며 유권자들이 의미있는 투표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테니까요. 

 

더 나은 사회와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한편 창조경제 관련 사업에 배정된 예산이 깎인다는 소식에 마음은 급해집니다. 박근혜게이트와 관련된 사업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적어도 비리와 사업은 구분되어 도마 위에 올라야 합니다. 창조경제 사업에만 목을 멜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척박한 스타트업 투자 환경 탓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두 개의 순실이 창업자의 운명에 큰 지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는 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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