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찬의 영어해방기

수업시간. 필통을 하나 집어 들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What is this?"

학생들은 재빨리 말을 뗀다.
"This is a..."

2초 정도의 망설임 뒤, 생각났다는 듯 학생들이 외친다.
"pencil case!"


"This is a pencil case." '이것은 필통  입니다' 라는 뜻이다.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거 아니냐며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이 기본적인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드물다.ᅠ

‘This is a pencil’ 은 하나의 의미단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 번에 읽어야 한다. 영어담화분석론에 따르면 하나의 의미단위 안에서 0.5초 이상의 정적(pause)이 발생하게 되면, 사고(accident)가 일어났다 라고 말한다.ᅠ

사람들은 자신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중급, 고급표현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초는 대략 숙지했는데 숙어를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는 외운 단어수가 부족해서 영어 말하기를 잘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안타깝게도 영어울렁증은 숙어를 많이 모르거나 고급 문법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영어울렁증은 기초의 부재에서 온다. 한국어로 예를 들면 더욱 알기 쉽다.

영희 : "철수야, 그거 뭐야?"
철수 : "아 이거... 시계야."
영희 : "(왜 이렇게 뜸을 들이지) 혹시 아버지 유품?"


극단적인 예다. 다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독자라면 철수 대사 속 정적에서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의 의미단위 안에서는 좀처럼 쉬지 않는다.ᅠ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문장은 쭉 이어서 말해야 자연스러운 스피킹을 할 수 있다.ᅠ

"하지만 pencil case 가 생각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요?" 많은 학생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This is’를 하고 난 후 쉬는 게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어민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단어든 떠올리고자 하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is a’를 무작정 내뱉고 다음 나올 단어를 생각하는 대신, 'pencil case'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 뒤 ‘This is a’를 붙여서 한꺼번에 내보내는 것이다.ᅠ그럼 이렇게 된다.

영희 : What is this?
철수 : Well(이때 생각한다), / This is a pencil case.(이어서 말하기)
영희 : It looks fancy!


원어민들도 우리와 같이 어떤 문장을 말하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다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문장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해야 할 핵심내용. 위의 문장에서는 pencil case를 떠올린 후에 그 밖의 단어들인 This is a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이거 뭐야?”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그 뒤 ‘시계’라는 대답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이건 시계야"라고 ‘이건(이것은)’ 이라는 말을 붙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What is this?”란 질문을 언어로서 받게되면 이 영어질문이 향하는 핵심 사물로 사고가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 영어학습자들은 책으로만 영어를 배우다보니 맹목적으로 ‘this is a(이것은)’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해버리는 데에서 실수가 생긴다. 정작 필요한 답은 ‘pencil case’인데 말이다.

영어 말하기의 기본은 어려운 문장을 많이 읽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쉬운 표현을 얼마나 완벽하게 쓸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 그리고 기초라는 말은 그것이 쉽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기본이 되는 토대. 중요하기 때문에 기초다. 기본과 기초를 무시하면 영어의 탑은 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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