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문화위‧콘진원까지 의혹 한복판에…“예산 등 산하기관 독립 고민해야”

박명진 문화예술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체부 산하 유관기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 위원장 오른편 인물은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 사진=뉴스1

 

최순실(60)씨 비선실세 의혹과 미르‧K스포츠재단 특혜논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문화 관련 기관들을 도미노처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휘말린 논란에 출연기관들이 함께 엮이고 있다는 점도 도드라진 특징이다. 문화계 안팎에서는 기관 간 위계서열과 예산문제가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산하기관의 독립성이 논란의 불길을 잠재우는 근본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체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의 한복판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두 재단은 설립허가부터 특혜 논란 시비에 휩싸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평균 법인설립 허가 절차가 20일 정도 걸린다. 그런데 (두 재단의 경우) 같은 날이나 다음 날 됐다”며 “청와대와 문체부의 개입은 없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문체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고 내용에 따라 청문회까지 갈 것인지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검찰의 칼끝도 문체부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검찰은 20일과 21일 연이어 문체부의 국장급 공무원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23일에는 K스포츠재단을 담당했던 전임 문체부 과장급 공무원 1명도 불러 관련 사항을 캐물었다.

미르재단 불똥은 문체부 소속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로 튀었다. 국회 교문위원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기간인 지난달 10일 미르재단 모금과정의 단서를 엿볼 수 있는 문예위 회의록을 공개했다. 

도 의원에 따르면 문예위원인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지난해 11월6일 문예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활용해 대기업 발목을 비틀어서 미르재단 설립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며 “기가 막힌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도 다시 문체부가 등장한다. 회의록에 따르면 박 회장의 말을 들은 박명진 문예위원장은 “메세나가 있는데 이것을 왜 따로 만들어야 하나 이렇게 생각했다”며 “문체부에도 한 번 문의를 해서 다음 번 회의에 그 답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은 다시 논의되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와 서울대 부총장까지 지낸 인사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 방송통신심의위원장도 지냈다.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은 홍익대 영상대학원장을 지낸 것 이외에는 문화계 안팎에서 크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박 위원장이 문화계, 학계 안팎에서 가진 위치가 더 공고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박 위원장은 김종덕 전 장관이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논문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미르재단 사무실 모습. / 사진=뉴스1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회의에서 나온 민감한 문제에 관해 ‘문체부에 문의하겠다’는 표현을 내놓는다. 이 같은 표현은 문체부와 소속기관 간 권력관계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이 관계를 잘 아는 인사는 기자에게 “결국 예산 문제가 크다. 그러니 산하기관 입장에서는 문체부 사무관 입김에조차 휘둘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산하기관들이 문체부 현장 사업에서도 문체부 눈치를 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셈이다.

문예위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도 논란에 휩싸였었다. 지난해 9월 도종환 의원은 문체부 국정감사를 통해 “문예위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사 과정에서 특정 작가를 거론하며 선정 리스트를 90명으로 줄여 달라, 심사 결과를 조정해달라고 한 일이 있었음이 심사위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TV에 나와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을 한 바 있는 이윤택 작가가 탈락했다. 이 작가는 희곡 분야 심사에서 100점으로 1순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핵심에도 문예위가 아닌 문체부가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문예위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문체부의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다. 이들 기관은 각각 문화예술진흥기금과 영화발전기금을 관리하는 주체다. 국고와는 별개 예산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 기관의 기금 운용계획도 문체부 예산계획과 함께 발표된다. 발표 주체는 문체부다. 문체부 입김이 강하게 스며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진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에 간접적으로 휘말린 점도 구조적 문제가 작용한 탓이라는 평가가 많다. 앞서 영진위는 18일 저녁 늦게 ‘2016년 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 심사결과’에 대해 추가 공지사항을 발표한 바 있다.(관련기사: [단독] '블랙리스트' 김기덕에 서둘러 답한 영진위) 이른바 ‘블랙리스트 예술가’ 명단에 포함된 김기덕 감독의 항의 때문이다.

영진위가 블랙리스트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맺었다는 정황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영진위 역시 문체부 입김에 자유롭지 않다는 분석은 많다. 블랙리스트 이슈가 제기된 당시 한 한 문화관련 시민단체 인사는 기자에게 “현장에서는 문체부의 입김이 아주 강하다. 그런데 산하기관 사업에서 현장 문화인들과 당국 사이의 전반적인 거버넌스(협치) 구조가 깨졌다는 걸 감지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문화체육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최근 문체부와 관련한 대부분의 논란은 김 전 장관의 재임 시기 발생했다. / 사진=뉴스1

 

역시 문체부 소속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은 송성각 원장이 미르재단의 설계자이자 문화계 막후 실력자로 꼽히는 차은택(47) 전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 추천으로 낙점됐다는 의혹에 휩싸여있다. 또 10일 콘진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차 전 단장이 기획‧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현재도 콘진원 홈페이지에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핵심동력’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 정부의 국정기조를 그대로 홍보문구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김종덕 전 장관 역시 차 전 단장 추천인사라는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차 전 단장은 김 전 장관이 대학원장까지 지낸 홍익대 영상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 문체부와 관련해 거론되고 있는 대부분의 의혹은 김 전 장관 재임당시 발생했다. 차 전 단장은 자신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김형수 원장을 미르재단 이사장에 추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문화 기관들이 정치 이슈에 휘말리다보니 현장 예술가 사이에서는 박탈감마저 돌고 있는 모습이다. 소설가 손아람(36)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화예술인인데, 내가 들어보지 못한 재단에서 대통령 이름이 그림자처럼 스쳐가니 며칠 만에 500억을 모았다”며 날을 세웠다. 

잇따르는 논란에 관해 문화계 안팎에서는 문체부를 정점에 둔 수직적인 상하관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산과 사업방향에 입김을 행사하는 문체부의 존재 탓에 산하기관들이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논란을 잠재울 대책 역시 산하기관 독립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혁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문화 기관들 간 수직적 위계서열 문제는 개혁이 필요하다. (산하) 기관들이 어떻게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현장의 전문가들과 문화예술인, 그리고 시민들과의 거버넌스 방식도 새롭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프라 건립 외에는 문화정책 자체가 가시적 성과가 안 나오는 분야이니 장기적으로 참을성 있게 지켜봐야 한다는 점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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