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발로쓴글] 왜 부끄러움은 학생들 몫인가
  • 최윤호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chldbsgh19@naver.com)
  • 승인 2016.10.2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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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번째 이야기

 

대학원 입학과 함께 학교 주변에 방을 구했다. 신림동 고시촌. 이곳 원룸의 광고간판은 평수와 가격이 아닌 ‘00년도 사법고시 n명 합격’, ‘00년도 행정고시 n명 합격’으로 채워졌다. 도림천이 만나는 높은 언덕에는 100여 개 원룸 건물이 가득 들어서 있다. 해질녘이면 고시촌에는 담배 연기와 한숨이 가득하다. 하루에 네 시간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사당오락은 이곳에서는 옛말이 아니다. 하루 종일 공부를 이어가는 고시생들은 이전에도 늘 치열한 경쟁 선두에 서 있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사법고시 폐지 합헌 판결을 내렸다. 긴 시간 누군가에겐 기회의 장이 되어 온 사법고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사법고시 폐지의 당위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만 개천에서 용 나기는 더 어려워졌고, 부모 세대 재산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로 이어지기 너무 쉬워졌다.

 

한 청년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좋을 말을 타고 선두에 섰다. 동기들은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단잠과 숱한 명절, 또 다른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청소년 74%가 대학에 진학한다. 재수 학원가는 늘 가득 찬다. 학생증을 받고 교수 강의 듣으려면 12년 동안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경쟁해야 한다.

 

대학 생활 역시 단잠과 즐거움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과제를 해내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잠을 이겨내야 하고 즐거움을 유예해야 한다. 오죽하면 4월에 피는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다.

 

존경하는 교수 강의에서 정의의 문제가 화두가 된 적 있었다. 놀이동산의 인기 기구를 비싼 표를 주고 산 사람은 줄을 서지 않는 것이 정당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에 표를 주고 들어가는 고객 입장에서 더 많은 값을 지불한 사람이 편하게 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단순한 심정적 불쾌함 탓에 화가 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답했다. 교수는 그 심정적인 불쾌함만으로도 분노의 사유가 될 수 있고 정의의 원칙에 관해 질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물며 반드시 공정해야 할 대학입시와 학사관리에 불공정이 자행됐다. 좋은 말을 탄 이 청년은 남들은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학칙 개정으로 인한 성적 수직 상승’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면 좋은 운까지 타고나는 것일까.

 

명문 사립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을 통과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은 미루고 해야 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했던 학생들은 잘못이 없다. 최소한의 맞춤법과 맥락 없는 레포트가 B+를 받는 순간, 학교에 나오지 않아 재적되어야 할 학생이 두 번의 학칙 개정으로 구제된 순간 같은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우들은 참담해졌다.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야당 대표가 130년 학교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한 순간 왜 부끄러움은 학생들 몫인가. 언제나 그랬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누구보다 성실했고 치열했다. 

  

대학의 학위장사를 막기 위해 촛불을 든 학생들에게 1000명 넘는 경찰 인력으로 답한 총장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모인 학생들을 마주했다. 날씨는 제법 추워졌고 대기는 미세먼지로 가득 찼다. 총장은 직무를 그만뒀지만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책임지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학생들 마음의 상처는 누가 위로할 것인가. 

 

오늘도 고시촌에는 고시생들의 한숨이 바람에 스치운다. 불통과 불의에 맞서 함께 손을 붙잡고 스스로 대학의 가치를 지켜낸 이화여대 학생들 용기에 진심을 담은 존경을 보낸다. 이화정신은 섬김과 나눔이다. 부정의에 대해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보여준 그들의 몫은 부끄러움만이 아니다. 정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희망이 여기에 있다. 

 

최윤호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최윤호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chldbsgh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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