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발 9473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일파만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파만파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출석 여부와 관련해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진=뉴스1

 

문화예술계에서 ‘문화계 1만명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은 지난해부터 파다했다. 그런데 이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명단에는 국민배우로 불리는 김혜수, 송강호 뿐 아니라 칸 영화제 수상경력의 박찬욱 영화감독도 속해 있었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5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에서 내려왔다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푸념을 들었다”는 예술계 인사의 말을 전하며 이 인사가 당시 촬영해둔 9473명의 명단이 담긴 블랙리스트 문건의 표지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여기에는 ‘합계 총 9473인, 세월호 시행령 폐기선언 문화예술인 594인, 문재인 후보지지 선언 6517인, 박원순 후보지지 선언 1608인’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명단에는 배우 김혜수, 송강호, 문소리, 윤진서, 박해일 뿐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인 강우석, 류승완, 박찬욱, 임순례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또 요리사 박찬일, 시인 송경동, 진은영, 문학평론가 염무웅, 황현산 등도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들은 세월호 시행령 폐기선언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문체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휘말린 셈이다.

명단은 개별적 문화예술계 인사의 작품 활동 등을 근거로 작성된 게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특정 정치인 지지선언이나 세월호 관련 선언에 참여한 명단을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명단에서 이름이 거론된 한 문화계 인사는 “리스트라는 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품을 보고 판단한 게 아닌 거 같다. 아마 액셀파일 넣고 쫙 돌린 것일 텐데, 이게 그냥 일부 예술관련 협회 등 맘에 안 드는 단체 참여자 명단을 쫙 넣고 만든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만 명이 나올 수 없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은 유진룡 전 장관이었다. 앞선 문화계 인사는 “유진룡 장관 해임 이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도 전했다.

유 전 장관의 해임 역시 세월호 사건과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는 정황이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말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응책을 논의하던 중 유 전 장관은 “내각부터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가 유장관에게 민심 회복을 위해 특강을 하도록 지시한 것을 거절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도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문 전 대표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검열을 위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밝혀졌다”며 “부끄럽고 미련한 짓이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문책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시장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런 야만적 불법행위와 권력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대상 아닌가”라며 “권력의 막장드라마이고 사유화의 극치”라고 더 날을 강하게 세웠다.

아직 ‘블랙리스트’ 명단의 존재가 현장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다만 문화계 인사는 “현장에서는 문체부의 입김이 아주 강하다. 그런데 산하기관 사업에서 현장 문화인들과 당국 사이의 전반적인 거버넌스(협치) 구조가 깨졌다는 걸 감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13일 문체부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블랙리스트 존재를 묻는 새누리당 간사인 염동열 의원의 질문에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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