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의 재소자 폭행을 일반 상해죄로 처리 고집

그래픽=김재일

 

“피고인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 

공판 검사가 구형하자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성동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건’ 피해자 유아무개씨가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는 그의 얼굴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예상이라도 했다는 표정이었다. “기자님 잘 보셨죠. 결국 검찰은 공무원인 가해자 편입니다.” 

 

지난 1월 사건이 접수된 후 지루하게 이어진 정식 재판의 법정 공방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검찰의 적극적인 공판 대응을 요구해왔던 유씨로서는 아쉬운 시간만 흘렀을 뿐이었다. 지난 9개월여 동안 검찰의 태도는 변한 게 없었다.  

 

9월29일 서울동부지방법원 3호 법정에서 이른바 ‘성동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건’의 결심 공판이 열렸다. 성동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건은 지난 2013년 12월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 유씨를 구치소 기동대 소속 박아무개씨 등 교도관 3명이 폭행을 가해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검찰의 약식기소, 법원이 제동 걸어 열린 정식 재판


올해 초 유씨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면서 검찰이 사건을 소극적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유씨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1월 유씨가 폭행에 가담했거나 방관한 것으로 지목한 교도관 3명 중 박씨만을 기소했다. 하지만 일반 상해죄를 적용했고, 정식 재판이 아닌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로 사건을 처리해 논란을 빚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같은 법무부 소속인 교정 공무원들을 봐줬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검찰의 약식기소 처분에 제동을 건 것은 법원이었다. 서울동부지법(형사9단독)이 검찰의 약식기소가 부당하다며 정식 재판을 열기로 한 것이다. 검찰이 약식기소 처분하더라도 재판부가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법원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뒤 교도관 박씨와 변호인은 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등 시종 일관 혐의를 부인했다. 유씨가 교도소 내에서 소란행위를 했고 이를 제압했을 뿐이라며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식 재판에 앞서 조사를 진행했던 국가인권위원회은 피해자 유씨 주장에 더 신빙성을 가졌다. 다음은 유씨의 진정을 접수 받아 조사를 진행한 인권위의 보고서 중 일부다. 

 

“2014년 7월 서울대학교병원 발행 진정인의 소견서 상…(중략)…오히려 진정인(유씨)의 주장처럼 피진정인(교도관 박씨 등) 중 한 사람이 구둣발을 고의로 진정인의 발등을 세게 밟아 누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진정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됨. 그렇다면 진정인의 주장대로 진정 내용과 같은 방법으로 폭행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국가인권위는 교도관 3명 중 누가 유씨 발등에 상처를 냈는지, 구체적인 폭행방법은 무엇인지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가인권위는 이를 위해 검찰에 유씨의 사건을 수사 의뢰했다. 시사저널e는 이후 정식 재판을 참관하면서 검찰의 기소나 대응에 대해 취재해 왔다. 

 

◇"검찰 ‘형법 125조’ 적용 안하면 왜 법이 필요하나" 


‘제 식구 감싸기’ 행태로 비난받았던 검찰의 태도는 정식 재판이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검찰이 기소한 교도관 박씨에 대한 적용 혐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재소자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 교도관들에 대한 혐의를  형법 125조를 적용하지 않고 이보다 벌칙이 가벼운 상해죄를 적용한 것이다. 

 

형법 125조(폭행, 가혹행위)에 따르면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 또는 기타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는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경우 5년 이하 징역과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어 상해죄보다 형이 무겁다. 인신 구속 상황에서 국가 권력의 인권침해 방지를 고려해 만들어놓은 형법 조항이다. 

 

피해자 유씨의 거듭된 요청에도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다. 검찰은 공식 서류를 통해 유씨에게 “피의자는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지정된 교도관이 아니어서 형법 125조에 규정된 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형법 125조에는 ‘특별사법경찰관’을 지칭해 거론한 대목이 없다. 

 

반면 인권위는 2015년 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해당 교도관들에게 형법 125조를 적용하고, 나아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 2(체포·감금 등의 가중처벌)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형법 125조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  

 

검찰은 유씨에게 판례가 없다는 식의 해명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한 결과, 교도관이 재소자를 폭행하거나 가혹행위를 할 경우 형법 125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는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06년 8월 서울구치소 재소자에게 성추행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 심사 분류과 교도관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그에게 적용된 죄목에는 형법 125조와 같은 ‘독직 가혹행위’도 포함돼 있었다.   

 

시민단체는 성동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건 처리가 검찰의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 식 기소 행태라고 비난했다.사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선미 참여연대 시민감시1팀장은 “교정시설 내에서 자행되는 교도관의 인권 침해 사건이 주기적으로 드러나며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는 유관기관의 공무원이라고 해서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는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형법 125조를 적용하지 교도관에게 적용하지 않으면 굳이 그 법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사회적인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라도 검찰이 성동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건을 제대로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약식 기소한 사건을 정식재판으로 회부한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인권침해 사건을 약식 기소를 하고 형법 125조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 있다”면서 “선고를 앞둔 재판부가 어떻게 사건 처리를 할지 주목해 볼 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적용 법조를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 유씨에게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성동구치소 재소자 폭행 사건의 선고일은 내달 3일이다. 3주가량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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