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선 변호사 “자동차사, 소비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인식…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해야”

 


9월 30일 법무법인 민 사무실에서 임윤선 변호사를 만났다. 임 변호사는 '부산 싼타페 사고' 보도를 접한 뒤, 기자에게 운전자를 돕고 싶다는 연락을 취해왔다. / 사진=배동주 기자

자동차 결함 의심사고는 처리 과정이 진부하다. 제조사 대응이 한결같다. 블랙박스와 폐쇄회로TV(CCTV)에 담긴 다급한 운전자 목소리, 튕겨져 나가는 자동차 모습에도 결함인정은 없다. 국민은 이제 자동차사에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는 법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법을 공부했다는 변호사가 보는 자동차 결함 의심사고는 어떨까. 친(親)기업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제조물책임법, 대안으로 제시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바라보는 법조인의 시각은 소비자와 다를까.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 출신인 법무법인 민 소속 임윤선(38) 변호사는 “자동차 결함 문제는 법이 아닌 사회 저변에 깔린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생명경시 풍조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자동차사가 안전 보다 이득을 중시한 나머지 ‘아집에 갇힌 노인’이 돼버렸다”며 거대 법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30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법무법인 민 사무실에서 임윤선 변호사를 만났다. 깔끔한 하늘색 블라우스에 뚜렷한 이목구비, 중저음의 목소리. 첫 인상은 사뭇 차가웠다. 하지만 외모가 자아낸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는 몇분도 걸리지 않았다.

◇ “차량사고 영상 보고 충격…공정한 재판 받게 하고 싶었다”

지난 8월 2일 부산 감만동에서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했다. 싼타페를 타고 가족과 피서를 가던 운전자 한모(64)씨가 갑자기 치솟은 차량 속도 탓에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일가족 5명 가운데 생후 2개월 된 갓난아기 등 4명이 숨졌고 운전자 한씨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8월 4일,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부산 싼타페 사고 기사 봤습니다. 운전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습니다.” 발신자는 임윤선 변호사.

임 변호사라면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이다. “새누리당은 매력 없고 능력 없는 남자”라는 날선 발언으로 유명세를 탄 변호사다. 임 변호사는 똑 부러지는 입담으로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자동차와는 거리가 있던 그다. 메일을 보낸 이유가 궁금했다.

임 변호사는 “블랙박스 영상 속 운전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너무 끔찍했다.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아기를 걱정하는 동승자 목소리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영상을 보며 어린 조카 4명이 떠올랐다고 했다. 답변하는 임 변호사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다만 임 변호사가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임 변호사는 “교통사고 소송 경험이 미천했지만 운전자를 돕고 싶었다. 최소한 내가 맡으면 조금 더 많은 이들 관심 속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손쉽게 일방의 잘못이나 사고원인 불명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끈질기게 (재판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 “제조물책임법, 자동차사에 유리하지 않아”

 

임윤선 변호사는 제조물책임법이 친기업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소비자들이 과실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 지난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진=배동주 기자
임 변호사에게 다소 껄끄러운 질문을 던졌다. 앞서 임 변호사가 짚은, 자동차 결함사고 시 재판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조성된 원인에 대해 물었다. 임 변호사가 속했던 새누리당 그리고 국내 현행법이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가 아니냐는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의원들을 만났지만, 이들 모두 자동차사고에 ‘꼼꼼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 권석창 의원과 이헌승 의원이 각각 '자동차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동차 소비자 권리를 강화하는 게 주 골자다.

임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현행법에 대한 신뢰도 확고했다. 제조물책임법 존재 자체가 소비자 권익을 위하는 선진국법이며, 유럽연합(EU)이나 미국과 비교해도 관련 규정이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입증책임에 있어 소비자들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법이 제조사에 유리하진 않다. 다만 우리나라 판례가 소비자에게 조금 불리한 게 스스로 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자동차사는 운전자가 과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무엇을 안 했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와 같은 추론을 낸다. 말장난이다. 결국 논리와 별개로 소비자가 감정적으로 법 앞에 무시당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아집에 사로잡힌 자동차사…법 아닌 생명경시 풍조부터 바꿔야”

임 변호사는 국내 자동차사들을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에게 호통 치는 노인’에 비유했다. 국내 소비자와 해외 소비자를 차별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아집에 갇힌 채 큰 소리를 ‘떵떵’ 치는 노인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이 같은 자동차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대 법인이 업무상 과실을 저지르게 되면 소비자 피해는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이에 비해 가해자에 대한 양형기준은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게 임 변호사 생각이다.

임 변호사는 “업무상 과실을 한명의 대표에 묻기에는 소비자들이 받는 피해가 너무 크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로서는 (기업 관계자들의) 양형이 가벼워 보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거둔 부당한 이익을 수거하는 구체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무조건 열배 스무 배로 물게 하자는 게 아니다. 한도를 정한 상태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일련의 자동차 결함사고와 국내 자동차사 대처가 빚어낸 참극의 원인으로 사회 저변에 깔린 생명경시 풍조를 꼬집었다. 법을 비판하기에 앞서 정부와 자동차사, 나아가 소비자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 변호사는 물질 탓에 사람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배금주의(拜金主義)가 자동차 결함사고를 ‘불행의 씨앗’으로 만든다고 밝혔다.

“고급차 광고를 보면 안전사양이 유난히 강조된다. 자동차 가격이 ‘목숨값’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즉, 자동차회사에게 있어 소비자는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이다. 지금까지 급발진 사고가 한 번도 인정되지 않은 저변에는 이런 인식이 깔려있다. 싸게 만들어서 이득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사고, 인간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사고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상, 우리들이 행복해 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법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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