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여건 악화속 4차 산업혁명 파고 높아…하드웨어 중심 사고 떨쳐내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이 일상화된 것이다. 각국은 양적완화, 재정확대 등 고강도의 처방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은행산업은 저금리 기조에 따른 수익성 저하와 지속적인 규제 강화, 경기침체 하에서의 자산 부실화 등으로 영업여건이 악화되면서 일부 대형은행들이 경영난에 내몰리고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금년 2월 도이체방크는 대규모 파생상품 매각손실과 소송비용 발생으로 코코본드의 이자도 갚지 못할 우려가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락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최근에는 미 법무성으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모기지증권을 불완전판매 했던 혐의로 140억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어 헷지펀드들이 익스포져를 급격히 줄이는 사태에 직면하는 등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등장했다. 코메르츠방크도 최근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배당을 전면 중단하고 9600명의 인원을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악성 부실채권이 급증한 이탈리아의 대형은행들도 채권자의 손실부담(bail-in)과 정부의 구제금융(bail-out)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아울러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ING은행도 저금리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엄격한 규제, 그리고 온라인 뱅킹의 거센 도전을 견디지 못하고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약 5500명의 인원을 줄이고 점포도 1250개 점포의 절반에 해당하는 600개를 없애기로 했다.

게다가 무리한 목표할당으로 직원들이 대량의 유령계좌를 만들어 물의를 빚은 웰스파고은행도 곧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미국 내 다른 은행들의 영업행위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한편 바클레이즈은행과 크레딧스위스은행은 도이체방크와 마찬가지로 모기지증권 불완전판매 혐의로 미국 법무성의 벌금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거듭되는 성장둔화와 조선업 등의 대출자산 부실화 등으로 적지 않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은행산업의 몰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지난 달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위험가중자산 산출방식을 개선하고 연말까지 바젤III 규제 개혁을 마무리 짖기로 하는 등 은행의 건전성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젤III에서는 자본규제를 세분화하고 항목별 기준치를 상향조정하여 자본의 질과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손실보전 완충자본과 레버리지 규제를 신설하는 등 손실흡수능력 보강과 경기변동에의 순응적 대응 및 무분별한 차입을 통한 자산확대 억제 등을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은행들은 막대한 자본확충 부담을 안게 되었고 실물경제에 대한 자금지원 여력도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미국 연준(Fed)은 지난달 예금보험공사(FDIC) 및 통화감독청(OCC)과 함께 은행의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분투자와 원자재 실물자산 보유를 금지하는 규제안을 미국 의회에 제출하였다. 금융혁신을 위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철폐했던 1999년의  '그램-리치-빌리법' 체제를 다시 과거 엄격한 분리를 규정했던 1933년의 “글래스-스티걸법” 체제로 되돌리는 듯한 이번 조치는 미국 은행들이 기업지분 투자로 피투자회사의 영업상황 관련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 저금리 하에서 수익성 저하를 고위험 지분투자 및 실물투자로 만회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읽혀진다.

이로써 미국의 은행들은 예금수취와 대출공여라는 전통적 은행업무의 틀 속에 다시 갇힐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규제는 미국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글로벌 규범으로 격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도 은행들의 출자전환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이나 은행의 수익모델 다변화를 위한 규제개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의 은행산업은 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바둑에서 인간을 압도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로보어드바어저, 빅데이터 등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금융 분야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그동안 은행들이 사실상 독점해온 지급결제, 대출서비스, 외환업무, 자산관리 영역도 혁신적인 ICT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마디로 은행은 새로운 경쟁자들에 의해 기능별 해체(unbundling)가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20여년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이미 “은행업은 필요하나 은행은 더이상 필요없다(We need banking, but we don’t need banks any more.)”고 말했던 것은 금융 3.0, 핀테크(Fintech) 등의 개념이 일반화된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너무나 신통한 예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은행들은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계속되는 영업환경 악화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과감히 혁신에 나서야 한다. 우선 모바일 혁명 등으로 공간적 점포망의 중요성이 줄어든 지금 하드웨어 중심적 사고를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는 차별화된 은행서비스(banking)를 원하는 것이지 특정 은행(bank)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감독규범 준수를 통해 불필요한 손실과 규제비용을 최소화하고, 성과중심 문화의 조속한 정착을 통해 개개인의 생산성 제고 노력을 유도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기술혁신과 빅데이터 분석능력 향상 등을 통해 비용을 과학적으로 줄이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우리가 그동안 금과옥조로 믿어온 "규모의 경제"가 이 시점에서 절대 불변의 이론인지도 곱씹어 봐야 한다. 규모를 키우거나 공룡의 모습을 유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몸집을 줄여 비효율적 사업을 걷어내고 강점 있는 분야에 특화하는 것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은행업에 대한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back to the basic) 은행업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들의 몰락은 대부분 파생상품 투자와 같은 투기적 행위에서 빚어졌다. 우량기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적시에 자금을 공급해주고 차주를 위한 자금관리, 경영컨설팅, 시장조사, 구조조정 지도 등 종합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실물경제에 대한 지원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자금수요층을 꾸준히 확대해 가며 은행을 착실히 성장시키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은행업의 본질을 예금자와 대출수요자 간의 연결 비즈니스(connection business)로 이해한다면 은행의 지속적 성장 여부는 오로지 기본기에 충실한 금융인의 성실한 연결 노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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