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네틱스, 시스템 작동·조작 연구

하인리히 불토프 막스 플랑크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 연구소 소장.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이용우

 

하인리히 불토프 막스 플랑크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 연구소장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 묻지도 않았는데 김치 이야기를 하고, 독일에서 문어를 ‘한국 스타일’로 요리한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불토프 교수는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 분야 최고 권위자다. 그런 연유로 한국 연구진과 교류가 많다.


그는 시사저널e와 시사저널이 지난달 28일 개최한 제2회 인공지능 콘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참가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차세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다소 생소한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관념을 확립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시사저널e는 28일 사이버네틱스를 보다 깊게 이해하고 향후 인공지능 연구 발전방향을 파악하기 위해 불토프 소장과 인터뷰했다.

막스 플랑크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 연구소 중장기 목표는.


막스 플랑크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 연구소는 1950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뇌 크기가 작은 파리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뇌 구조가 작을수록 연구가 쉽다고 생각했다. 파리는 뉴런이 100만 개밖에 없다. 그럼에도 주변 움직임을 잘 감지한다. 초기 파리 연구는 파리의 습성, 행동 양식, 뇌 구조 등을 탐구했다. 지금 연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체 시스템이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공부한다. 인과관계를 확실하기 위해 종합대조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파리가 아닌 인간을 연구하고 있다. 


사이버네틱스란.


사이버네틱스는 ‘조종하다’라는 그리스 어원을 가진 단어다.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는 생명체가 자신을 어떻게 조종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 체온은 37도다. 신체 내 효소가 가장 잘 작동하는 온도이기 때문이다. 그 37도를 유지하기 위해 몸 체온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절한다. 사이버네틱스는 시스템(인간 신체)이 어떻게 대상(체온)을 조절하는지 연구한다.
 

하지만 사이버네틱스는 인간이나 생명체를 넘어서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집 보일러만해도 24도로 실온을 설정한다면, 24도 이하로 떨어졌을 때 온도를 올리기 위해 보일러를 스스로 가동시킨다. 생물·무생물 구분을 넘어서,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인공지능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로봇과 소통하려면, 로봇도 감정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한다면 그 방식을 기계에 적용할 수 있다.


딥러닝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이다. 특정 임무만 수행 가능하고 그마저도 비효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바둑 한판 하기 위해 1메가와트 전력을 사용했다. 이세돌이 바둑 한판 두기 위해 쓴 에너지는 10와트 밖에 되지 않는다. 질적인 차이가 있다.


평범한 대화도 약한 인공지능에게는 어렵다. 주위 환경을 인지·반응하는 일은 하나의 업무만 잘한다고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기자처럼 인터뷰하려면 수많은 인터뷰 영상을 참고해야 한다. 기어코 인터뷰를 할 수 있겠지만, 같은 인공지능이 큰 길가에 나가 교통량을 분석하라고 한다면 못한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부른다. 약한 인공지능이 강한 인공지능이 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강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뇌를 물질로만 연구하려고 한다. 뇌 각 부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게 되면 모든 인간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동심리적인 측면을 보려한다. 시각, 청각, 촉각을 따로 연구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양한 감각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본다. 우리가 차를 몰 때 눈도 사용하지만 귀도 사용한다. 사람들과 소통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개를 끄덕이는 몸짓처럼, 비언어적 표현들은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는데 필수다.


뇌를 공부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감정·표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다. 향후 로봇은 인간 뇌를 모방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하드웨어” 즉 신체를 가질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도 인간보다 우월한 연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인간보다 못한 부분이 너무 많다.


인간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보다 나은 로봇을 만들 수 있다. 인간 신체와 다른 로봇 신체를 가지더라도, 시스템 작동 원리만 이해한다면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같은 인공지능만 개발 가능한가.


단순히 인간 시스템만 모방할 필요는 없다. 생명공학 사이버네틱스는 모든 동물을 연구한다. 시각의 경우 박쥐는 인간보다 우월하다. 빛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과 달리 박쥐는 초음파 감지를 통해 물체를 직접 인식한다. 박쥐처럼 물체를 인식하는 인공지능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고능력은 다르다. 인간만이 연구대상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 사고패턴·행동반경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수백만년을 걸쳐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검증을 거친 형태다. 인간과 맞먹거나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간처럼 세계를 탐험하고 세계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 같은 형태를 가진 건 중요하다. 인간 역사에서 바퀴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하지만 바퀴가 달린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기는 매우 어렵다.


현재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다. 데이터 분석 기능 밖에 없다. 내가 보고 싶고, 만들고 싶은 인공지능은 생명체처럼 세계를 스스로 탐험하고 공부하는 인공지능이다.

지능이란 무엇인가.


지능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공간인지지능, 소통지능, 수학적 지능처럼 세분화 돼있다. 하지만 그 핵심은 문제해결능력이다. 인간 제외 동물에게도 지능은 있다. 모든 동물이 먹고 살기 위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적생명체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 자체를 즐긴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도 그렇다. 공을 던지면 다시 물어 오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일을 즐기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인간의 의식·감정을 정의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과학보다는 철학에 가깝다. 인간도 제대로 모르면서 기계 의식을 논하는 건 더욱 어렵다.

인간지능을 모방하려고 한 연구는 실패했다. 기호적 인공지능(고파이:GOFAI)는 인간지능을 어설프게 모방하려다가 실패했다. 사이버네틱스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고파이는 성공할 수 있다. 초기 고파이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로봇이 직접 사물을 인식할 수 없었다. 알고리즘과 논리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짤 수 밖에 없었다. 인식하지 못하는 물체에 대한 문제를 상상과 추론만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당연히 어렵다. 


지금은 컴퓨터 계산 능력이 향상되었다. 초기 카메라가 빛을 담기만 했다면 지금은 빛을 직접 내는 카메라도 있다. 인공지능이 분석할 수 있는 빅데이터 기반 사진 자료도 생겼다. 더 이상 알고리즘 사고에만 의존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인식하면 그만이다. 로봇이 장애물을 피하려고 할 때, 장애물에 대한 세세한 세부 정보를 추론을 통해 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카메라를 보고 옆으로 피하면 그만이다.

초지능은 가능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능하다. 얼마 전만 해도 인간은 달에 가는 일을 꿈꿨다. 이제 우리는 화성에 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거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면 최첨단 비밀무기가 휴대전화나 시계였다. 제임스 본드는 소품을 이용해 본부와 소통했다. 지금은 일상이다. 아이폰 시리한테 말하는 걸 아무도 놀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초지능도 언젠가는 나타난다. 


인간이 진화의 끝이 아니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충분히 나올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개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지만, 개들과 잘 지내고 있지 않는가?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가능하다면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범용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범용인공지능은 우리가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필요한 일을 대신 해준다. 인간은 자기 시간을 좀 더 하고 싶어했던 일들에 쏟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미래는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미래다. 방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걱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두려움에 빠져있다. 틀림없이 대체한다. 하지만 새로운 직종도 생겨난다. 인간이 가진 창의력을 발휘해 다른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다. 삶을 즐기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미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변화를 쉽게 받아들여야 한다. 평생직장, 평생기술 같은 단어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시대에는 사라진다.


연구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에게 좋은 연구 주제·문제를 주고 이를 해결하게 하는 일. 내가 막스 플랑크 연구소장으로써 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럽에서도 인력유출이 심하다. 앞으로 우리 연구소 과제는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다. 어떤 연구하든지 똑똑한 사람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