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나선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이 실종됐다. 27일 후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됐는데, 실종된 김주열이었다. 경찰은 시신 발견 초기 이를 도립병원으로 옮기고 사실을 은폐하려 했으나, 행방불명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온 마산으로 퍼졌다. 흥분한 시민 3000명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 시신을 확인했으며, 김주열의 어머니는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10대 고등학생이 대통령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진실을 밝혀야할 경찰이 오히려 그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에 분노한 마산 시민과 학생들은 4월 11일 전면적인 시위를 실시하였고, 마산경찰서를 점거한다.

이후 시위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홍진기 내무부장관은 시위를 부정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 시위가 아니라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경찰에 실탄 발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한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전면적 시위가 진행되고, 이어서 4월 19일 서울에서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의 전면 시위가 진행됐다. 시위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거주하는 경무대 인근까지 진출에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에 의해 상당수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러한 참혹한 결과에 결국 대학교수들과 국민학생들까지 시위에 참여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군대가 오히려 시민을 보호하면서 함께 활동하니,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4·19 혁명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4·19 혁명의 과정을 이렇게 회상하는 까닭은 지난 일요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백남기 농민에 대한 일부의 시각이 너무나도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소위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의 고귀함과 엄정함을 주장하는 이들은 상술한 4·19 혁명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을 죽인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반면, 김주열 열사처럼 공권력의 과도한 집행으로 인한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을 모독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는가 하면, 차마 입에 담고 글로 옮기기에도 참담한 ‘시체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 죽음과 그것을 추모하는 이들을 모독하고 있다.

만약 저들이 진정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그것을 따른다면, 그들은 마땅히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독재를 시도한 이승만 대신, 그에 맞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낸 위대한 시민들의 4.19 혁명을 칭송해야 한다. 그 맥락에서 역시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위한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백남기 농민을 추모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행사에 있어 국가의 보장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자유주의의 본질이나 주권자는 스스로 국가 권력의 형성에 참여해야 하며 그 권력의 행사가 정당한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그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법치주의 원칙에 있어서도 이는 문제인 것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지적된 바 있지만, 헌법 제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즉,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한국에서 60대 후반의 노인이 단순히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운용규범조차 확립되지 않은 캡사이신 섞은 물대포에 맞아 병원에 317일 동안 입원했다가 그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은 결국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초래된 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나도 "민중 총궐기" 류의 과도한 시위는 지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시위에 대한 나나 다른 시민들의 호불호가 아니라, 그 시위가 왜 발생했는가다. 권력관계에 있어 약자의 마지막 수단인 시위는 그들의 정당한 모든 의사표현 수단이 막혔거나 혹은 통하지 않을 때 선택된다. 그렇다면 시위를 한 사람들이 아니라, 무엇이 그러한 시위를 유발했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시위 통제의 기본은 시위대와 일반 시민의 안전 보장이지, 4·19 혁명의 경우처럼 최고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 혹은 심기경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경찰이 행하는 시위 대처 역시 저러한 심기경호와 다를 바 없다. 시위대와 일반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 목표가 아니라, 선출직 국가원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4·19 혁명 당시에도 허용되었던 세종로와 광화문으로의 시위대 진출이 왜 현재는 허용되지 않는가. 이러한 경찰의 과잉대응은 분명 문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농민 두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경찰청장은 자진 사퇴 형식으로 해임되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입원한 시점부터 세상을 떠난 현재까지 현 정부의 대응과 과거 노무현 정권의 시위 농민의 사망에 대한 대응, 둘 중 어느 것이 더 올바른지는 명약관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12월 27일 행해진 대국민사과문에서 공권력의 적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 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공권력은 그 막중한 힘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그렇기에 절제되어 사용돼야 한다. 그 절제의 기본은 이번 사태에 있어 심각하게 결여된 엄격한 운용 규범과 명확한 책임 소재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법치주의. 이상에서 논의된 것처럼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안타까운 사망은 그것을 추모하기는커녕 비판하는 사람들이 준거로 삼는 사상을 가져와도, 정부의 잘못임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정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추모하고, 정부의 과도한 공권력 집행을 비판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보수 일각에서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시민이라면 마땅히 행해야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