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자 김모 부장 “신뢰 믿어 미국에 제보…달라진 현대차 위해 일하고 싶다”

29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한 카페에서 현대차 리콜은폐 의혹을 제기한 김진수(가명) 부장을 만났다. 김 부장이 언론에 자신의 얼굴을 공개한 건 이번이 최초다. 김 부장은 자신의 공익제보가 당당하기에 얼굴을 감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사진=정한결 기자

 

지난 23일 현대차 현직 직원이 언론을 통해 공개한 문건이 현대·기아차를 발칵 뒤집어 놨다. 문건에는 현대·기아차가 결함차량을 리콜(제작결함 시정)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황을 뒷받침하는 분석 결과도 빼곡했다. 현대·기아차 치부를 들춰낸 이는 25년차 ‘현대맨’ 김진수 부장(54·가명)이다.


김씨는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7개월 간 현대차 품질전략팀에서 근무했다. 김씨가 맡은 업무는 파워트레인 리콜. 현대·기아차 안전 일선에서 일하며 김씨가 느낀 건 ‘괴리감’ 그리고 ‘실망감’이었다. 품질경영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던 회사는 안전 불감증에 걸려있었다. 리콜 대상 차량을 애써 외면하고 은폐하라는 지시가 계속됐다. 김씨는 양심의 가책을 버텨내지 못했다.

“일부 차량에서 안전과 직결된 결함들이 발견됐지만 회사는 임의방식대로 처리했다. 불법이 관행이었다. 품질본부는 비용문제와 오너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압박감 탓에 소비자를 최우선해야 한다는 현대차 핵심가치를 지키지 않았다. 고민한 끝에 ‘나 아니면 대기업을 상대로 싸울 직원이 없다’고 판단하고 제보를 결심했다.”

김씨는 국토교통부 교통안전공단을 찾아가 현대·기아차 실상을 알렸다. 그러나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기엔 조직 인원수와 장비가 부족하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고민 끝에 김씨는 미국으로 향했다. 일각에선 김씨가 큰 보상을 노리고 미국 정부에 공익제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지만, 김씨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공평성’ 그리고 ‘친소비자 정책’ 이 두 가지가 김씨의 미국행 배경이 됐다.

“포상금이 1순위는 아니다. 공익제보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자동차사와 제보자 사이에서 공정하게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기관. 그런 면에서 한국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보다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더 믿을 수 있는 기관이라 생각했다.”

김씨가 공익제보 한 지 일주일 여가 흘렀다. 그 동안 김씨의 몸과 마음도 지쳤지만, 공익제보에 대한 확신은 더 커졌다. “꼭 이겨내라”는 가족의 응원도 힘이 됐다. 김씨는 사사로운 이익 탓에 제보한 것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다. 엔지니어로서 양심을 걸고 제기한 문제를 현대·기아차가 인정하고, 10년 뒤 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게 김씨 바람이다. 29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김진수 부장은 공익제보 후에도 현대차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교통부를 찾아간 김진수 부장. / 사진=김진수 부장

- 25년 다닌 회사다. 공익제보한 계기는.
지난해 2월부터 7개월 간 품질전략팀에서 일했다. 파워트레인 리콜 업무를 담당했는데, 리콜성 안전결함을 임의방식대로 처리하는 게 관행이더라. 안전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결함은 정부와 고객에게 알려야 한다는 자동차관리법을 지키지 않았다.

- 품질본부가 리콜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비용문제도 있지만 현대차는 리콜 관련된 모든 사항을 회장에게 보고한다. 품질본부는 차량 양산과 리콜 모두를 최종 결정한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오너에게 실토한다는 게 부담스러운 구조다.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렇다보니 (리콜 은폐문제) 되풀이됐고, 도저히 이런 부서에서 일을 못하겠더라.

- 부서를 옮기는 과정에서 감사팀으로부터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는 각서를 받았다고 들었다.
(관련기사 : http://www.sisajournal-e.com/biz/article/158129)
사실관계를 바로잡겠다. 보안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긴 했지만, 감사팀이 아닌 전략팀이다. 품질문제를 발설할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었다. 부서 이동 뒤 총 2번에 걸쳐 전략팀 직원이 찾아와 서약을 요구했다. 그 때 우리 조직이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확신했다. (이 질문에서 김씨는 박병일 명장의 감사팀 관련 발언은 사실이 아니며 박 명장과 연락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가장 심각한 결함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YF쏘나타 세타2 엔진의 콘로드 베어링 소착으로 인한 엔진소음 및 엔진손상 결함이다. 미국에서 리콜했으면 같은 엔진, 같은 부품을 쓰고 있는 한국산 엔진도 리콜해야 한다. 도로에서 달리던 차 엔진이 손상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 국토교통부 아닌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찾아간 이유는 무엇이냐.
지난해 8월 20일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을 찾아갔다. 결함조사팀과 현대·기아차 품질결함 사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조직 인원수와 장비가 부족해 사실상 조사가 어렵다고 털어놓더라. 한국에서 해봤자 소용없다 생각했다.

- 일각에선 미국 정부 보상액이 더 큰 탓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공익제보자로서 보상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제보 뒤 포상금을 받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 돈이 공익제보 1순위가 돼서는 안 된다. NHTSA는 찾아간 이유는 공정하게 판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판단에 있어 기업을 배려하는 측면이 강하다.

- 대기업과 맞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공익제보 후회한 적 없나.
미국에서 공익제보자는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라 한다. 안 좋은 일을 미리 경고하는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제보 전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수차례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부고발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제보 후 회사에서 압박이 들어왔지만 후회는 없다.

- 따님이 인터넷에 아버지를 응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제보 전에는 반대가 많았다. 신중히 결정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이런 제보가 불가능하다고, 감히 대한민국에서 나 아니면 현대차 내부 문제를 얘기할 사람이 없다고 설득했다. 현대차를 상대로 현직직원으로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10년 내에 나올 수 없다. 제보 이후에는 아내도 딸들도 힘내고 꼭 이기라며 응원해 준다.

- 현대차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리콜은폐 책임자를 문책하고 리콜을 실시해야 한다. 고객들에게 외면받기 전에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폴크스바겐처럼 어려운 상황 맞을 수 있다. 또 리콜 비용이 적은 경우는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그 보다 아랫선에서 최종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전결권을 낮춰서 리콜에 대한 부담을 줄여야 한다. 외부 컨설팅 등을 통해 리콜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공익제보 정당성을 회사가 인정해줬으면 한다. 난 사사로운 욕심이 아닌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보를 했다. 회사가 당장은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다만 10년 후에는 ‘그 친구 이야기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란 말을 회사로부터 듣고 싶다. 회장으로부터 포상도 받고 싶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나에게 내려진 접근금지령을 풀어주고 정년까지 회사를 잘 다닐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현대차를 믿을 수 있나?

회사를 믿고 싶다. 공익제보 뒤 품질전략실장도 바뀌었다. 이번 (공익제보를) 계기로 안전문제를 잘 풀어낸다면 현대·기아차가 고객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일이 마무리되면 달라진 현대·기아차를 위해 일하고 싶다.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회사를 자랑할 수 있는 ‘성공한 공익제보자’ 선례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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