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너무 밀착돼 야권 공격 초래…치우친 한류사업 구조 탓 분석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 참석해 출범 기념 점등판에 점등 톱니바퀴를 꽂은 뒤 박수치고 있다. 왼쪽은 손경식 CJ회장. / 사진=뉴스1, 청와대

 

‘1995년 3월 말, 이재현 당시 제일제당 상무는 단출한 협상실무팀을 꾸려 누나인 이미경 이사와 함께 미국 LA로 날아갔다. 그는 할리우드 거물들과의 협상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여념이 없던 이미경 이사에게 진지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

올해 2월 출간된 ‘CJ의 생각’에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 협상 파트너는 미국 드림웍스였다. 결국 제일제당은 드림웍스 자본금 10억 달러 중 3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또 드림웍스로부터 영화배급, 마케팅, 관리, 재무 등 운영 노하우와 영상 기술을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같은 해 8월 식품회사 제일제당에 처음으로 멀티미디어 사업부가 신설됐다. 이른바 ‘문화기업’ CJ의 첫 발자국이다.

문화는 이제 CJ를 상징하는 낱말이 됐다. 앞선 책의 표지에도 ‘문화에서 꿈을 찾다’라는 말이 쓰여 있을 정도다. 한류시장에서 CJ는 아시아와 미국을 아우르는 플레이어가 됐다.

 

하지만 안방에서는 탈이 날 조짐이다. 이른바 ‘정치 리스크’에 휘말린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CJ 의존형으로 흘러가는 한류사업 구조 자체가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야권이 박근혜 정부를 집중 공격하면서 문화사업이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지는 격이 됐다.  


29일 야당이 주도하는 경기도의회는 고양시 ‘K-컬처밸리 특혜의혹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조사활동계획서를 의결한다. 이 위원회는 12월까지 경기도와 CJ 간 K-컬처밸리 관련 절차위반 사항을 면밀히 조사한다.

앞서 경기도의회는 경기도가 CJ E&M 컨소시엄에 특혜를 줘 고양시 장항동 K-컬처밸리 용지 23만7401㎡를 공시지가(830억원)의 1%에 불과한 8억3000만원에 빌려준 점을 문제 삼았다. 도의회는 기본협약을 하면서 도의회 보고와 동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며 행정사무조사를 발동시켰다. 전체 도의원 중 3분의 1 이상이 안건발의에 참여했다.

K-컬처밸리는 CJ가 정부와 함께 케이팝 등 신한류 육성을 명분삼아 고양시 한류월드 부지에 만드는 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초의 한류 복합 테마파크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업비만 1조 4000억원이 들어갔다. 2000석 규모의 융복합공연장 뿐 아니라 테마파크와 쇼핑‧숙박시설도 들어선다.

문화체육관광부도 5월 20일 열린 기공식에 맞춰 홍보관을 개관했다. 역시 명분은 한류문화 알리기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손경식 CJ회장이 직접 박근혜 대통령에게 ‘K-컬처 밸리’ 사업구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내세운 박 대통령도 K-컬처밸리에 힘을 실어줬다. 기공식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한류관광객 유치를 통해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효자상품이 문화콘텐츠”라며 “오늘 착공하는 K-컬쳐밸리는 이러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조성의 화룡점정”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도 손경식 CJ회장이 직접 박 대통령에게 홍보관을 설명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최근 미르재단 논란에서도 등장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미르재단 신임 이사 강명신은 CJ가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든 문화창조융합센터장”이라고 날을 세웠다.

문화창조융합센터는 ‘문화창조융합벨트’의 주요 네 거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1일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에도 참석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에 의해 ‘박근혜 정부 문화계 황태자’라 불린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단장)도 CJ 관련 행사에 몇 차례 등장한 정황이 나타난다. 차 전 본부장은 문화창조융합센터가 CJ E&M 일산 스튜디오에서 개최한 ‘2015 융복합 콘텐츠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도 나섰다. 같은 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명성 (당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현재 문화창조융합본부장(단장)이다.

국내 한류사업의 구조 상 CJ의 문화사업이 ‘정치리스크’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 문화산업 전공 학자는 “국내에서 문화기업이라 말할만한 유일한 기업이 CJ인 게 문제다. CJ가 한류수출의 모든 포트폴리오를 갖춘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 역시 문화융성 내세우면서 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CJ가 문화분야에서 이렇게 비대해질 동안 중소업체들이 크지 못한 한국의 경제시스템도 문제 아니겠느냐”며 “국내 한류시장 자체의 근본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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