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이야기

 

거짓말 조금 보태 지난 1년 중 200일가량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머물렀다. 경영 동아리 인액터스(Enactors) 선후배들과 청계천 헌책방 부활 프로젝트인 ‘책 it out’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책 it out’은 서울에 마지막 남은 헌책방 거리에 묻힌 소중한 가치를 밖으로(out) 끄집어내보자는 뜻이다. 프로젝트 중에서도 헌책방 사장님들이 소비자들의 개별 취향에 맞춰 직접 고른 책 3권을 배송하는 ‘설레어함’을 시작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본 논리에 의해 무너지는 소상공인의 애환과 보존되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헌책방의 문화적 가치는 이 사회 속에서 경영학도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큰 자극을 줬다. 이 곳에 내가 지금껏 배운 지식을 쏟아부어보자고 결심한 이유다.
 

청계천 헌책방 되살리기 프로젝트 책 it out를 진행한 연세대학교 인액터스(Enactors) 동아리 학생들. 왼쪽에서부터 박미지, 장도련, 권홍욱, 신하연, 김수경, 김태훈, 이선호씨. / 사진=김태훈
청계천 거리에서 보낸 시간은 장밋빛만은 아니었다. 며칠 밤을 새서 내놓은 아이디어는 20분만에 그럴 듯한 이유로 지적받기 일쑤였다. 도움을 얻기 위해 보낸 수백통의 이메일은 수신미확인으로 보낸편지함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다.

그 중 최악은 처음으로 받아본 악플이었다. ‘책 it out​' 프로젝트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뉴스란 곳에 나왔다. 댓글창을 열어본 순간, “쟤들도 결국 저거 스펙 쌓으려고 저 난리 치고 있는 거 아니냐.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그냥 다 죽게 놔둬라” 라는 댓글을 발견했다. 이후 한동안은 ‘내가 무엇인가 한다고 세상이 뭔가 그렇게 바뀔까?‘ 라는 허탈함이 들었다. 어쩌면 그냥 사는 대로 사는게 내 개인의 영달에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한참을 허탈함과 무력감에 찌든 채로 지냈다. 더 이상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아서 과감히 휴학을 신청하고 여기저기 놀러다녔다. 조금 지나고 나니 무력감과 허탈함도 옅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악플을 받고 허탈함과 동시에 세상에 대한 초연함도 생겼던 것 같다.

내가 뭘 한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한다고 혹은 안 한다고 세상에 잘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각자 사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행동할 뿐. 내가 청계천에서 헌 책과 함께 지내왔던 시간들이 남들이 알아줄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들이박고 싶은대로 들이박다보면, 또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세상은 놀랄 만큼 바뀌지 않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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