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추석 연휴 첫 날인 14일,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엘이 세계적인 농업기업 몬산토를 660억 달러(약 74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이와 관련한 음모론도 나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이 인수합병이 어떻게 가능했냐와 이 건에서 한국이 무엇을 배워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세부 전공이 재무-금융 트랙이다. 현재 대학원에서 금융공학 전공으로 박사를 준비하고 있기에, 관심있는 주제 중 하나가 인수합병이다. 기업 간 인수합병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그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금융 기업과 시장이므로 재무-금융 및 금융공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 인수합병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었던 310억 달러에 성사된 RJR 내비스코의 LBO(Leverage Buyout,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을 인수하는 인수합병 방법)가 그 사례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RJR 내비스코의 최고경영자인 로스 존스 측 혹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ohlberg Kravis Roberts, KKR) 측으로 갈라져서 인수합병 전쟁을 벌인 바 있다. 이는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한국에서 기업 인수합병은 악덕 기업사냥꾼이 선량한 오너로부터 기업을 빼앗아 노동자를 해고하고 시설을 매각해 단기 수익을 말 그대로 ‘뽑아먹고’ 다시 매각하는 일종의 ‘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재 한국의 기업 및 금융 시장 환경에서는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금융 시장의 규모가 작고 세계적 수준의 금융기업도 없다. 게다가 이러한 작은 금융 시장의 활동에 비해서도 인수합병은 활성화 돼있지 못하다. 투자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보유한 금융기업은 산업은행밖에 없고 관련 법규도 미비할 뿐더러, 이런저런 규제로 인해 기업 인수합병이 쉽지 않다. 간혹 한국 자본이 아닌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예컨대 2000년대 초반에 이슈가 된 바 있는 소버린의 SK 주식회사 적대적 인수 시도 같은 일이 벌어지면 주요 언론부터 일제히 '국부유출'을 언급하며 방만한 경영으로 투자자들의 가치를 훼손한 국내 기업을 변호하기 바쁘다.

인수합병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잘못됐다.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마이클 젠슨은 1993년 전미재무학회(American Financial Association, AFA) 회장 취임 연설에서 현대 경제가 직면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기업 통제권 시장(Market for Corporate Control)"을 언급한 바 있다. 즉 기업이 경영에 실패했을 경우 그 기업의 통제권을 거래할 수 있는 적대적 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 외부에서의 적극적인 감시 유인을 통해 현대 기업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 즉 주주가치 극대화의 실패, 전문경영인의 도덕적 해이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자면 기업통제권 시장에서 거래가 시도되는 이러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존재는 경영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제대로 된 경영활동을 통해 주주가치 극대화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일부 주주들 혹은 외부 투자자들에 의해 경영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 작용하여 전문 경영인으로 하여금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주주가치는 흔히 "잔여 청구권(Residual Claims)"이라 한다. 노동자, 채권자 및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대가를 지불한 나머지를 주주에게 지불하기 때문에 주주가치는 곧 회사 영업활동에서 창출되는 수익의 잔여 청구권이 되고, 이를 극대화하는 것은 곧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지불되는 것도 극대화함을 의미한다.

물론 오너들이 극히 소규모의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의 방법을 통해 기업집단을 통제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주주가치 극대화는 곧 오너에게 돌아가는 가치 극대화로도 일컬어지면서 그들이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기형적인 한국적 "재벌" 시스템 자체가 문제일 뿐이다. 인수합병 시장에는 문제가 없다. 만약 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 되고,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았다면 재벌 오너들도 자신이 아닌 다른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는 다시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초래된 조선업 혹은 한진해운 문제가 시장에서 해결됐을 가능성도 있었음을 의미한다. 시장의 합리적 기능을 무시하고 정부가 산업정책 혹은 구제금융 정책으로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한 것이 문제를 키운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문제인 외국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합병에 수반되는 국부유출 우려도 걱정할 바가 못 된다. 이미 한국 주식시장에는 외국인 투자자가 금액 면에서 다수고, 대다수 대기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국부가 유출되고 있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국부를 유형 자산으로 간주하는 중상주의적 사고에 불과하다. 국부는 시민 개개인의 소득과 그 소득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 소유주의 국적과는 상관이 없다. 즉, 시민 개개인의 소득 수준과 소비 수준을 향상시킬 수만 있다면 한국 내에서 생산 및 투자활동을 하는 기업의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이엘은 몬산토를 합병함으로써 사업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됐다. 몬산토 역시 제품군을 다양화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주주는 물론 노동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이러한 인수합병이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기업의 긴장감 없는 방만한 경영을 우려해야 하는 일이다. 이제 한국도 우호적 인수합병 뿐 아니라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물간 국부 유출 논의는 그만둬야 한다. 그것이 기업 경쟁력 제고는 물론 국가 경쟁력 향상과 국부 증진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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