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스스로 거리의 철학자’를 자처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신간을 출시하면서 한 인터뷰가 문제가 되고 있다. 대중강연과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이름을 알린 강신주씨(49)는 그 전에도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을 유흥업소에서 노는 것에 비유하는 표현으로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50년 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없어지고 자신만 남을 것이라 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은 철학적 깊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두 발언 모두 문제가 심각하다. 먼저 “50년 후에는 자신만 남을 것이라는 발언부터 살펴보자.

 

대학원에서 금융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지만, 학부 진학을 결정할 때 사학과나 철학과 진학을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역사와 철학을 정말 좋아한다. 그렇지만 배움이 얕고 아는 바가 없어 학문적으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역사에 있어서는 웬만한 대학교 전공 서적은 거의 다 읽었다. 철학도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존 롤즈의 정의론까지 어느 정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대충은 알고 있다. 물론 독학으로 익힌지라 이 내용들을 내가 완벽하게 소화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역사와 철학은 공부하는데 있어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다. 먼저 같은 점부터 살펴보면, 다른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책을 읽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공부할 것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모르는 사실이 나오고,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다른 점은 역사의 경우는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무언가 역사를 보는 눈이 뜨이고 무언가 나만의 관점이 생기는 듯 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철학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도저히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 심지어 내 자신이 갖는 관점이 없어지는 느낌을 준다. 쉽게 말해 철학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일개 대학원생에 불과한 내가 그 거리의 철학자에게 분노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거의 모든 학문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탐구하지만, 철학은 그 학문들의 근간에 있다. 굳이 박사학위를 영어로 Ph. D. 라 표시하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철학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 에 대해, 자연에 대해,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전제 하에 그 탐구가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철학은 자신에 대해 겸손하고, 다른 인간에 대해 사랑하며, 자연에 겸허하고, 세계에 호기심을 갖는다. 이건 철학뿐만이 아니라 철학에 바탕을 둔 거의 모든 현대 학문의 본령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거리의 철학자의 대중 강연이나 인터뷰에서는 이러한 사랑과 겸허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만하기 짝이 없다. 철학 강의 혹은 멘토링을 빙자해서 사람들에게 자신과 절절하게 마주치지 않아서 그렇다, 진짜 무언가를 추구한다면 자살을 하지 못한다운운하는 폭언을 내뱉고, 한 고등학교 특강에 가서는 치마를 담요로 가리고 앉은 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 그의 이러한 언행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깨우친 자"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깨우쳐줘야 할 무지몽매한 인간들"이다. 이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는 인류의 스승인 붓다,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진리를 탐구했으며, 공자 역시 제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가르침을 주고받았음을 "논어"를 통해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고, 붓다 역시 그가 깨우침을 얻은 뒤 행한 가르침을 보면 얼마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철학 및 철학에 기반을 둔 종교의 지도자 혹은 거장들은 그 거리의 철학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게 깨우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연민과 존중의 정신을 지녔다.

 

반면 그 거리의 철학자는 사람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선학, 동료, 후학들을 얕보고 모욕하며, 심지어 "50년 후에는 나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한 발언까지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철학자는 50년 후까지 남을 수 있는 자신만의 업적이 없다. 자신의 고유한 철학 체계도 없고, 내놓을만한 비평도 없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30대에 "논리-철학 논고"를 썼고,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와 버트런드 러셀 역시 버트런드 러셀이 30대 때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를 저술하여 왜 1 더하기 12가 되는지를 수학적, 철학적으로 증명했다. 이들의 업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길이 남을 업적이다. 그러나 이 불멸의 업적을 남긴 사람들조차 그 거리의 철학자 오만하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지는 않았다. 그 거리의 철학자가 과연 이들에 필적하는 혹은 대등한 업적이 있는가? 전혀 아니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페미니즘이 철학적 깊이가 없는 학문이며, 자신의 저술에 인용되는 여성 철학자가 한나 아렌트 한 명 밖에 없는 것은 여성이 철학이라는 학문에 기여한 바가 없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이라 주장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거짓이다. 철학에 있어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여성으로 멀게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신플라톤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히파티아 혹은 중세 기독교 철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 빙엔의 힐데가르트가 있고, 가깝게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있다

 

이 외에도 그 거리의 철학자와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수없이 많은 여성 철학자들과 페미니즘 이론가들이 있다. 그 거리의 철학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저런 발언을 했다면 그는 사람들을 기만한 것이고, 모르면서 했다면 학문적 엄밀함을 상실한, 학자로서의 결격사유다.

 

이처럼 오만한 사람이 일반 시민들에게 명성을 얻으며 학자연하는 세태는 비단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다. 강연이나 저술을 통해 그를 좋아하고 추종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멸시하고 경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깊이 없는 독설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착각하여 그를 좇는다. 그렇지만 이건 사람들이 틀렸다

 

현실에서 직면한 문제는 이런 사람이 주는 정신적 당의정 혹은 정신적 진통제에 취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약에 취해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주는 안락감에 빠져 모든 문제점을 잊어버리지만, 약에서 깨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다. 결국 현실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철학자연하는 사람의 독설이나 비난이 아니라, 그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스스로의 노력이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이제 정신적 진통제에서 깨어날 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