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전문가가 추천하는 문화‧미디어 분야 읽을 만한 책

기자는 정부출연기관에서 산업분석을 담당한 박사급 연구원과 문화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영화프로듀서 등 다방면의 인사들과 함께 추석연휴기간에 읽을 만한 문화‧미디어 분야 책을 골라봤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의 모습. / 사진=뉴스1

 

기자는 대학원에서 대중문화를 공부했다. 아직 국내에는 학술연구 대상으로서의 대중문화가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이미 대중문화 연구는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학계에서 독자적 위치를 구축했다. 각 대학의 언론(미디어)학, 사회학, 영문학, 국문학, 인류학, 여성학과가 주요 거점 노릇을 하고 있다.

이에 기자는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긴 추석연휴기간에 읽을 만한 문화‧미디어 분야 책을 골라봤다. 추천과정에는 정부출연기관에서 산업분석을 담당한 박사급 연구원과 문화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영화프로듀서 등 다방면의 인사들이 골고루 참여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주관한 제2회 한국방송평론상 최우수상 수상자이기도 한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는 이 기획을 듣고 단박에 헨리 젠킨슨의 ‘팬, 블로거, 게이머: 참여문화에 대한 탐색’을 추천했다. 헨리 젠킨슨은 MIT 인문학부 교수이자 미디어 비교연구 프로그램의 창립자다. 국내에는 ‘컨버전스 컬처’의 주창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장 박사는 이 책에 대해 “팬 문화가 하위문화(sub-culture)가 아닌 주류문화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문화산업에서 생산자와 수용자 간 경계가 흐려지고 수용자에 의한 2차 창작도 각광받고 있다”며 “헨리 젠킨슨 교수가 이 현상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이라고 추천했다. 이 책은 국내에 2008년에 소개됐다. 다만 지금은 절판 된 상태다. 불가피하게 도서관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원서읽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헨리 젠킨슨이 조슈아 그린, 샘 포드와 함께 쓴 ‘Spreadable media’도 읽어볼 만하다. 장민지 박사는 “오늘날 콘텐츠는 확산이 안 되면 바로 시장에서 사장된다”며 “이 책은 SNS공간에서 나타나는 콘텐츠 확산경로의 현황과 원인을 미디어 이론 및 경제학의 시각에서 재밌게 풀어낸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장민지 박사 등 국내 젊은 학자 3인이 공동 번역해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상태다. 내년 중 번역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최혁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방송·음악·잡지 등 미디어산업 내 노동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망한 ‘창의산업과 미디어 노동’을 추천했다. 이 책은 영국 리즈대학교 미디어산업연구센터 소장이자, 문화산업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개설서를 쓴 데이비드 헤스몬달프 교수의 저작이다. 호주 그리피스대학 조교수 사라 베이커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 연구원은 추천이유에 대해 “문화와 미디어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막상 누가 문화상품을 만드는 지에 대한 고민은 빈곤하다”며 “한국에서도 문화, 미디어, 예술분야 노동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좋은 노동에 대한 고민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헤스몬달프의 책은 관련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최 연구원은 국내 저작 중에서는 김성윤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의 저서 ‘덕후감’을 권했다. 이 책은 걸그룹에 열광하는 삼촌팬부터 MBC 예능 ‘무한도전’의 시대사적 의미를 캐내는 이른바 ‘무도빠’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문화 수면 아래 담긴 정치적 함의를 풍부히 해석해낸 저작이다. 아이돌 EXO에서 드라마 ‘미생’, 영화 ‘변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를 종횡무진 활보하는 저자의 박식함도 책을 돋보이게 만든다. 올해 1월 출간됐다.

영화연구자이기도 한 강봉래 영화프로듀서는 묵직한 학술적 논의를 담은 ‘영화작품분석’을 추천했다. 강 프로듀서는 허진호 감독의 ‘외출’과 ‘행복’, 임상수 감독의 ‘눈물’ 등에 참여했다.

제목만으로도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영화작품분석’은 프랑스 영화학자 자크 오몽과 미셸 마리가 함께 쓴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두 저자의 이력도 독자의 두려움을 키운다. 자크 오몽은 프랑스 파리 3대학(소르본 누벨) 영화학과 교수로 20년 이상 영화미학을 강의하고 파리고등사회과학연구소(EHESS) 연구책임자를 거쳤다. 미셸 마리 역시 파리 3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공교롭게도 강 프로듀서 역시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다만 강 프로듀서는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책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책”이라며 “특히 구체적인 영화 사례들이 많이 나와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 이론과 비평의 한복판에 들어가려는 이들에게 길을 밝혀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 책은 1934년부터 1988년까지 프랑스어권과 영어권에서 이루어진 영화작품 분석들을 제시해 요령 있게 그 도구와 방법을 설명한다. 1988년 첫 출간 후 프랑스 영화학계에서는 이미 고전의 자리에 올랐다. 출간 30년 가까이 지난 올해 8월 말에 번역판이 나왔다.

조금 더 쉬운 책을 골라달란 기자의 말에 강 프로듀서는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보이지 않는 영화’와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을 권했다. 허 평론가는 씨네21 편집장을 지내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도 맡고 있다.

이 중 2014년에 나온 ‘보이지 않는 영화’의 첫 챕터는 ‘아덴만 작전’을 다룬다. 허 평론가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인질로 잡힌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감행된 한국 해군의 작전 ‘아덴만의 여명’이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하나의 ‘액션영화’로 소비되는지 문제 삼는다. 이외에도 ‘레미제라블’과 ‘링컨’, ‘노예12년’, ‘변호인’ 등 다양한 영화를 다룬다.

전문가들이 주로 해외저작을 권한 까닭에 기자는 국내저자가 쓴 책을 골라봤다. 우선 권할 책은 최근 출간된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국제학과 교수의 ‘케이팝의 시대’다. 1978년생인 이규탁 교수는 미국에서 ‘케이팝 세계화(Globalization of K-Pop)’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한국 댄스음악이 본격 태동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자신이 케이팝 팬의 정체성을 가졌다는 얘기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케이팝의 태동과 확산을 학술적으로 다룬 저작이다. 케이팝과 한류에 대한 논문은 그동안 차고 넘쳤지만, 대중저작으로 나온 경우는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의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와 이 책이 ‘유이’하다.

보다 가벼운 필치로 대중문화를 공부 해볼 요량이라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저작 ‘대중문화의 겉과 속’과 ‘세계문화전쟁’을 권한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은 1999년 처음 출간된 이래 수십만 부가 팔렸고 2013년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강 교수 특유의 대중적인 필치가 웹툰, 한류 등 주요 이슈와 버무려져 독자를 안내한다. 각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개설된 ‘대중문화론’ 수업 시간의 교재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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