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지난해 5월 피셔 블랙, 로버트 머튼과 함께 옵션 가격 결정 모형을 만든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런 숄즈가 한국을 방문했다. 짧은 일정 속에서 그는 5월 20일에 고려대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강연에서 그는 금융시장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금융시장의 본질에 대해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것 혹은 서로 다른 기대에서 비롯되는 자산 가격의 차이를 거래하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마이런 숄즈는 금융시장의 본질에 대해 “위험(risk)을 거래하는 것”이라 정의 내렸다.

주식시장을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이 의미하는 것은 ‘기업의 소유권’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렸다. 숄즈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자신이 기업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거래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기업 통제에 대한 시장"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사람들이나 방어하는 사람들 정도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숄즈는 주식을 '위험을 나타내는 금융상품(financial Instruments which represent risk)'이라 일컫는다. 즉 숄즈에 따르면 주식은 자본수익 혹은 배당을 대가로 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증서다. 우리가 주식시장에서 어떤 주식을 매수하여 보유하는 것은 배당 수익 혹은 자본 수익을 얻기 위해 그 기업의 위험을 감당하는 것이다.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배당을 받았든 자본수익을 얻었든 손해를 보았든 상관없이 그 이상의 위험을 감당하지 않기 위한 행위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지적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위험을 거래는 것이 본질이기에 주식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다. 즉 시장 전체 지수의 등락 혹은 개별 기업 주식 가격의 오르고 내리는 것은 투자자들의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 되고, 이러한 변동을 유발하는 요인에 대한 정보는 곧 돈이 된다. 증권가에 소위 찌라시라 불리는 사설 소식지 혹은 유언비어가 끊임없이 유포되고 회자되는 것도 이처럼 정보는 곧 시장에서의 가격 변화와 연결 되고 그것은 다시 투자자 수익 혹은 손해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희진씨가 7일 긴급 구속됐다. 이씨는 케이블 텔레비전 주식정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로 행세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짓을 유포하여 손해를 끼침과 그 사기를 통해 자신의 수익을 올렸다. 정보가 중요한 주식시장의 특징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는 말이 있을 만큼 주식시장에서 정보가 갖는 가치는 중요하다. 예컨대 삼성전자나 애플의 분기별 실적발표가 예상될 경우, 사람들은 그 실적을 미리 예상하여 거래하기 때문에 주식의 가격에는 이미 실적에 대한 정보와 시장의 기대가 반영돼 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진 파마의 효율적 시장 가설(주식시장에서 가격은 모든 가능한 정보를 반영하여 결정된다는 가설)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실적이 투자자들의 예상을 충족시킨다면 가격의 변동은 없지만, 실적이 투자자들의 예상보다 저조하다면 주식 가격은 떨어진다.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정보가 갖는 중요성으로 인해 내부자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를 금지하는 법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소위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이러한 정보의 습득과 처리에 어려움이 많다. 아무리 전업 투자자라 하더라도 주식시장과 관련된 모든 거시경제지표와 개별 기업의 정보를 취합하고, 처리해서 사용하기에는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들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수단은 기껏해야 경제신문 혹은 경제전문 케이블 방송국의 주식 관련 프로그램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통적인 금융경제학의 시장미시구조 이론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을 실제 가격 결정에 있어 아무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소음(noise)으로 취급했다.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해서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 즉 기관투자자나 외국인 혹은 주문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시장조성자에 비해 개인투자자들은 정보도 없고, 주문 흐름도 볼 수 없어 결국 수동적인 가격 순응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가 없는 개인 투자자는 자신들의 투자 금액 혹은 수익을 정보를 가진 투자자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로 인해 개인 투자자들은 수익을 얻기 위해 정보를 더욱 갈구하게 되고, 이런 현실로 인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주식 혹은 금융시장 관련 전문가의 발언과 행위에는 언론사의 검증을 거쳤다는 권위가 부여되고,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게 된다.

이희진이 방송에 출연하여 주식투자를 통한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투자할 종목을 추천하며, 미라클인베스트먼트라는 유사 투자자문 업체를 설립해 사람들을 모아 그들에게 수백만 원에 상당하는 회원가입비를 받고 쓰레기 정보를 알려준 것에는 이처럼 방송을 통해 부여된 신뢰와 권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신뢰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저러한 신뢰와 권위에 묻혔다. 그렇지만 이희진의 이러한 사기 행위는 다른 모든 주식 혹은 금융관련 사기가 그렇듯이 들통 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많은 피해자를 남겨놓고 검찰에 구속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상술한 것처럼 정보를 중시하는 금융시장의 특성과 정보를 가진 기관투자자보다 그렇지 않은 소액 개인투자자가 더 많은 금융시장의 현실을 고려해보면, 개인투자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그 유력한 창구는 여전히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언론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먼저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을 검증하고 걸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책임한 경제 방송사나 종합편성방송사는 이희진을 지속적으로 출연시켜 그가 자신의 부와 능력을 허위, 과장함으로서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정보가 시장에서의 가격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금융시장의 본령으로 인해, 신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bankrun)이 발생하고,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시장 자체가 기능을 하지 못하고 붕괴된다. 조지 애컬로프가 그의 논문 ”레몬 시장(Market for Lemmons,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970)“에서 밝힌 것처럼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정보를 갖지 못한 사람은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 이익을 뺐기지 않기 위해 시장에서 퇴장해 결과적으로 시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희진 사기 사건은 이희진 개인의 거짓과 과장도 물론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그 이전에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검증해서 걸러야 할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이 더 크다. 이희진에게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이 그를 신뢰한 데에는 방송에 나온 그의 언행이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금융 거래를 시작한 이래 이러한 사기 행위는 언제나 존재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사기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그것을 거르고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그 기능은 경제신문과 경제방송을 포함한 언론에 있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희진은 언제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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