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비판이 진실 호도할 수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사태로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수출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의 밥줄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됐다. 당장 수출기업들은 물건을 제때 실어 보내지 못해 난리다. 그 수출입 화물 운송에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 또한 밥줄이 끊길 판이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정부는 한진그룹이 책임져야 한다며 그나마 남은 또 다른 수출입 물류회사(대한항공)마저 날려버릴 태세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런 공세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현대상선 경영권을 확보했기에 경쟁사를 도산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할 정도다. 그만큼 당국의 한진해운 처리가 올바른 것이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진해운 한진그룹 인수 전 이미 부실


일방적으로 매도를 당하고 있지만 한진그룹이 그처럼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부터가 우선 의문이다. 대주주를 옹호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한진해운은 2013년까지만 해도 한진그룹 계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이 인수하기 전에 이미 재무적 위험이 큰 회사였다. 연간 매출액보다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데다 전 세계적 불황으로 적자가 계속 늘어나 부도 직전에 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2014년 경영을 맡은 한진그룹이란 배경과 투자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한진그룹은 2014년 한진해운 인수 후 증자에 참여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또 교환사채 지급보증과 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 등으로 추가로 자금을 지원했다. 대한항공이 지난 2일 한진해운 교환사채 건으로 764억원의 파생상품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런 면에서 당국이 한진해운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칼날을 들이대는 게 타당한지 모르겠다. 한진그룹에 충분한 여력이 있다면 요구하지 않아도 지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녹녹치 않아 보인다. 주력사인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데다 적자가 이어져 심각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거기다대고 한진해운 지원 자금을 내라는 것은 대한항공마저 부도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채권자 책임엔 인색한 금융당국


한진해운 사태를 다루면서 보다 중요한 관점인 채권자 책임이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도 새겨봐야 한다. 한진그룹이 인수하기 직전인 2013년 말 한진해운의 부채총계는 9조 9022억원이나 된다. 금융회사들이 뭔가 얻어먹을 게 있었기에 돈을 빌려줬을 게다. 그렇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도 따라야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한진해운 사태에서 금융권 손실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한진해운 재무제표를 보면 부채총계가 지난 6월말 6조 802억원으로 줄었다. 특히 8조 4742억원에 달했던 장단기 차입금은 같은 기간 동안 3조6076원이나 줄었다. 연 매출 8조원대 기업에서 2년 반 사이에 4조원 가까운 돈을 빼냈다는 얘기다. 금융기관들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회사에서 자기들만 살자고 악착같이 돈을 뽑아냈다고도 주장할 수도 있다.

적자를 내지 않더라도 이런 압박을 받는다면 어떤 기업도 정상적 경영활동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채무자 책임만 강조한다. 그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올 때 우산 빼앗지 말라’고 강조한 걸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찌 보면 한진해운이 망한 게 금융권의 대출회수 때문이라고도 주장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금융기관들이 기간산업 같은 한진해운을 날려버리자고 쉽게 결정한 게 사실 손실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한진해운 처리는 구조조정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원칙이란 게 채무자 책임만을 강조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지원하라고 기준금리를 1.25%까지 낮춘 중앙은행의 결정을 외면한 것이기도 하다.


◇회생 의견 묵살한 책임 작지 않아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이러한 당국의 태도에 놀아난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자세도 이젠 도마에 올려야 한다. 한진해운이라는 회사나 해운업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남발한 기사들은 죄악에 가까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왜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회사가 문을 닫을 경우 파장이 얼마나 클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써낸 기사가 진실을 호도하고 국익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많은 언론이 정부가 한진해운 지원을 끊고, 그래서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조차 정부 발표만 앵무새처럼 옮겼다. 국가경제의 혼란이 불가피한데 금융권 손실이 크지 않다는 정도로 전한 게 대표적이다. 법정관리 주체인 법원이 버젓이 있는데 한진해운 자산을 제멋대로 가져가겠다는 당국자의 얘기를 무책임하게 전한 대목에선 기자가 쓴 글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채권단 회의 결정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채권단이 만장일치로 한진해운 지원을 거절했다지만 한진해운을 살리자는 쪽에 섰던 은행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한진해운 지원 차단이 회생의 비용편익 분석이나 파장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결정됐다는 걸 숨긴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현대증권을 매각한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을 들이대며 왜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을 지원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현대상선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는 자회사인 반면, 대한항공은 불경기 때 운 나쁘게 한진해운을 인수한 모회사라는 큰 차이조차 모르는 소리다.

언론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필요한 서별관 회의마저 일방적으로 매도해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든 원죄도 안고 있다. 정치권 당파 싸움의 첨병 노릇을 하느라 국익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는 얘기다.

이처럼 한국 언론은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진실을 파헤치기는커녕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일방적 주장을 전달하거나 비난전에 가세해 여론을 호도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떠벌림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모습은 언론이라고 부리기가 민망할 정도다.

지금도 정부나 언론은 한진그룹 대주주를 막다른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다간 대한민국 수출에 꼭 필요한 해운에 이어 항운까지 망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구조조정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하더라도 때를 살피고 정도를 따져야 한다. 경제를 살리려는 것이지 망치는 것이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언론의 올바른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다. 섣부른 재단으로 당국과 국민의 판단을 그르치지 말라는 얘기다.

최근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그들이 한진그룹 대주주에게 돌을 던질 자격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러기에 언론에게 남을 비난하고 책임을 묻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릇된 보고로 임진왜란을 초래한 조선통신사 노릇은 하지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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