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 열차 탄 베트남에 한국 상품 홍수…식품·주류에 문화상품까지 수출 급증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 위치한 현지 최대 대형마트 이온몰(EON MALL). 국내 멀티플렉스 업체 CGV의 로고가 눈길을 끈다. / 사진=고재석 기자

 

베트남 경제가 고속 성장 급행열차를 탔다. 수도 하노이 신도심에는 속속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마치 1990년대 한국 신도시를 옮겨다놓은 듯하다. 자연스레 국내 산업계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엔터테인먼트와 식‧음료, 홈쇼핑 등 ‘먹고 마시고 노는 걸 파는’ 기업들은 벌써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현지 TV에는 ‘런닝맨’ 등 국내 방송콘텐츠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마트에도 국내과자가 가득하다. 한류가 이 흐름을 견인하는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양새다.

◇고속 성장 급행열차 탄 베트남에서 한국이 보인다

베트남의 경제성적표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되레 좋다. 2010년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를 넘나든다. 같은 기간 세계평균 대비 2배를 웃도는 수치다. 외국자본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국내기업이 베트남에 누적 투자한 금액만 50조원에 이른다.

2013년에는 공식국가 명칭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베트남 민주공화국’으로 바꾸자는 논의도 있었다. 시장경제의 진전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제기된 주장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는 ‘한국형’ 경제성장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수도 하노이의 신도심은 마치 1990년대 분당이나 일산을 떠올리게 했다. 고층건물 숲이 본격적으로 조성되는 모양새였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시내 곳곳에 매장을 열었다. 하이트진로 현지법인 관계자는 “한류 조성 과정에서 코리안 레스토랑에 대한 선호가 크게 늘었다”며 “연예인 중에도 송중기나 이광수가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베트남 CGV이온극장 내부의 모습. CGV는 올해 베트남에서 최단기간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3개월 이상 빠른 시점이다. / 사진=CGV

베트남에서 TV를 켜니 국내 예능과 드라마가 넘치듯 방영 중이었다. SBS ‘런닝맨’은 쉽게 시청할 수 있었다. 한국 상품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도 좋은 편이다. 하이트진로 현지법인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참이슬도 한글상표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렇게 해야 한국제품인 걸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덤이지만 베트남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와의 정면경쟁도 피할 수 있다.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는 “베트남 에서는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서 그쪽 기업들이 쉽게 들어오기 힘들다”고 전했다.

◇ 한류 최대 수혜주 엔터기업…CGV‧CJ E&M 함박웃음

이런 분위기 덕에 베트남에서는 ‘먹고 마시고 노는 걸 파는 국내기업’들의 진출이 매우 활발하다. 한류를 등에 업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이미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한 모습이다.

7일 CGV는 베트남에서 최단 기간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CGV가 3분기 만에 현지에서 1000만 관객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000만 관객 돌파시점은 12월 18일이다. CGV가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2011년 당시 한해 누적관객은 440만명이었다. 가파른 성장세다. CGV는 7일 현재 베트남 내 35개 극장 231개 스크린을 갖춘 베트남 1위 극장 사업자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선전은 베트남의 인구구성비율 덕을 크게 봤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다. 평균연령은 28세에 불과하다. CGV 측도 젊은층을 적극 겨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GV에 따르면 7월 처음 선보인 특별상영관 ‘침대관’은 베트남 평균 좌석점유율 20%의 두 배가 넘는 50%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이 덕에 CGV 베트남의 2030세대 관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나 늘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베트남사업을 총괄하는 곽동원 CGV 상무는 “올해 극장 수를 41개까지 늘리고, 관람객도 1500만 명 이상 끌어 모을 계획”이라며 “2,3선 도시까지의 극장 인프라를 구축해 베트남 영화 중심의 영화편성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CGV의 베트남‧한국영화 편성비율은 35% 수준이다. 2011년 당시 베트남 내 할리우드 영화상영 비율은 무려 85%에 달했었다.

이 분위기를 등에 업고 같은 그룹 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CJ E&M은 베트남에서 하반기에만 2편의 합작영화를 개봉한다. 우선 오는 16일 현지에서 한-베트남 합작영화 ‘하우스메이드’가 개봉한다. 195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제작된 호러물이다. 베트남에서는 5번째로 개봉하는 합작영화다. 6번째 합작영화는 12월에 스크린에 걸리는 ‘사이공 보디가드’다.
 

CJ E&M이 현지업체와 합작으로 제작한 영화 하우스메이드 메인포스터. 이달 16일 개봉한다. / 사진=CJ E&M

현재 베트남 시장 역대 박스오피스 1위는 국내영화 ‘수상한 그녀’를 베트남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내가 니 할매다’이다. 하리원도 이 영화에 출연했다. 최민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CJ E&M은 흥행 콘텐츠의 판권 판매뿐 아니라 성공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각 국가의 문화와 취향을 반영해 현지화하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전략에 기반한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관심은 현지 스타들의 면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지 음원차트 1위를 기록 중인 가수 하리원(여‧31)은 베트남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다. 국적 역시 대한민국이다. 10월부터 방영 예정인 드라마 ‘오늘도 청춘2’에도 한국배우 강태오와 베트남 여배우가 공동주연을 맡았다. 이 드라마의 ‘시즌1’은 지난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 현지마트 과자코너 장악한 오리온, 주류에 프랜차이즈도 눈독 들이는 하이트진로

베트남 현지 식‧음료 코너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국내 기업은 오리온이다. 기자가 찾은 하노이 시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온마트’ 과자 코너에는 오리온이라는 글자가 가득했다. 한 칸 전체가 오리온 과자로 채워진 경우도 있었다.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중형 마트에서도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오리온에 따르면 베트남 법인은 ‘투니스’, ‘오스타’ 등 스낵류가 고속 성장 중이다. 또 지난해 출시한 자일리톨껌과 콘칩도 매출 상승을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 오리온 베트남법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5%나 성장했다. 해외법인 중 가장 높은 성장세다. 연간 매출액은 2000억원대까지 올라왔다.
 

하노이 이온몰 과자코너 한복판에 비치돼있는 오리온 과자들. 오리온 베트남 법인은 올 상반기 20%나 매출이 상승했다. / 사진=고재석 기자

이에 대해 오리온 관계자는 “중국법인의 매출 규모에는 아직 비할 바가 아니지만 현재 해외법인 세 곳 중 가장 성장세가 크다”며 “2005년 법인 설립 후 진출 10년 됐으니 자리를 완전히 잡았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도 최근 베트남법인 설립을 완료하고 시장안착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20년까지 현지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를 7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원샷 문화가 형성돼 있어 소주 진출에 유리하리란 전망이 많다. 소주가 속한 카테고리인 베트남 증류주 시장은 최근 5년간 17% 성장했다.

지난달에는 하노이 번화가에 한국식 팝업스토어인 ‘진로소주클럽’도 열었다. 이를 발판 삼아 국내에서는 아직 시도하지 못한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진출한다는 복안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내년 프랜차이즈 식당 오픈을 위한 예비단계”라며 “음식과 안주도 현지인 입맛에 맞는 레시피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열린 관련행사에는 현지 댄스그룹의 케이팝 공연과 가수 하리원의 무대가 연이어 열렸다.

한 대기업 계열 식자재기업도 베트남 현지 업체와 최종인수협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S홈쇼핑도 지난달 22일 베트남 국영방송국 VTC Digicom과 한국 상품의 베트남 판매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VTC Digicom은 50개 이상 채널을 방송하는 현지최대 IPTV 사업자이기도 하다. NS홈쇼핑은 한류수혜 종목인 식품‧화장품 등을 집중 공급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한류 등에 탄 베트남 진출 전성시대’인 셈이다.
 

베트남 이온몰 현지 주류코너 모습. 한글로 된 참이슬 제품이 눈길을 끈다. / 사진=고재석 기자

김아영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 연구원은 “베트남은 이미 한류에 대한 인기가 정점에 이르러 진출 안정기에 접어든 시장”이라며 “현지물가로 따지면 매우 비싼 케이팝 공연에도 관객들이 인산인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베트남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수적 문화경향이 짙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주류에 대한 규제도 강해 광고법상 알코올 도수 15도 이상은 TV광고가 엄격히 제한돼있다. 경제는 개방흐름을 탔어도 정치체제는 아직 사회주의인 까닭에 당국통제가 강한 편이다.

김 연구원은 “최근 베트남 당국이 케이팝의 댄스나 뮤직비디오가 가진 선정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한국문화를 워낙 좋아하니 문제 삼는 거다. 이 부분을 신중히 고려해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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