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찬의 영어해방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심장은 분당 120회 속도로 미친듯이 요동친다. 이는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How are you?" 라고 인사할 때, 영어 못하는 한국인들 반응이다.

영어를 12년 넘게 배웠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고, 정작 심장만 미친듯이 뛰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실전에 대비해 훈련하지 않은 탓이다.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피겨 꿈나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 한다. 교본을 보고 식단을 관리하고 스트레칭을 열심히, 아주 꾸준히 해 왔다. 그의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쇼트 프로그램을 실전에서 연습해 볼 기회를 갖지 않았다. 아이스링크장이 너무 춥고 미끄러질까봐 무섭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결국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아마 설령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하더라도 인사도 하기 전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을 것이다. 우리의 영어교육방식은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문법책을 공부하고 독해책을 독파하고 단어장을 씹어 먹으며 공부하지만 정작 언어의 본질인 소통을 위한 실전교육은 미비한 것이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실이다. 국내 영어교육의 목적은 오로지 대학진학, 취업, 승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통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밟고 올라서기 위해 배운다. 이래서는 외국인과 대화할 수 없다.

외국인 앞에서 입을 떼고 말하고 싶다면 상황을 가정해 훈련해야 한다. 

한 번에 세 벌의 트럼프카드의 배열순서와 모양을 몇 분 만에 정확히 기억해 내는 기억력 천재들, 메모리챔피언쉽 우승자들의 두뇌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은 그들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놀라운 기억력의 비결은 이 ‘기억의 궁전’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기억법에 있었다.

원주율의 숫자를 몇 천개씩 암기하고 있는 메모리챔피언쉽 참가자의 두뇌를 스캔하면 일반인과 달리 공간지각력을 담당하는 두뇌가 활성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주어진 정보를 빨리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집이나 학교 등, 시각적으로 익숙한 공간을 그리고 그 건물 곳곳에 단어를 형상화시켜서 넣는다고 한다. 이 방법을 조금만 연습하면 어떠한 사람이든 자신의 기억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효과가 있는 이유도 같은 데에 있다. 그냥 같은 단어를 노트에 새까맣게 써보는 것은 그저 온라인 뱅킹 때 필요한 임시 비밀번호를 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일이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그 표현이나 단어가 쓰일법한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해 보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을 상대로 가정하고 말을 연기하듯이 해 본다면, 그 표현은 신기하리만큼 분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울 때 언제나 이렇게 단어를 배워 왔다. 그때는 단어장으로 본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단어를 발견했다. 

언어공부는 일상에 녹아있다. 언제나 잊지 말자. 상황을 가정한 훈련. 공간지각력을 활성화해 영어를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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