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노오오오력.” 무언가 성취하는데 있어 한 개인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소셜미디어에서의 반감과 비꼼이 섞인 말이다.

 

성공에 있어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 경향이 더 심해진 듯하다. 그 배경엔 사회 곳곳에서 “멘토”를 자처하며 나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에게 “죽도록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설파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이 멘토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여 성공했다고, 현재 어려운 처지에 놓인 젊은 세대도 마땅히 죽을 만큼 노력하여 그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 성공은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멘토들의 저 주장은 틀렸다. 한 사회 내에서 개인의 성공은, 전적으로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그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행운 혹은 사회적 지원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결합돼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성공을 거둔 대다수 사람들은 이러한 행운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회적 지원은 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그 행운과 사회적 지원은 한 사회 내 다른 구성원들의 비용 지불로 인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 장학재단에서 선발하는 장학생으로 외국에 유학을 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열심히 공부한 것이나 장학생 선발에 지원한 것은 그 자신의 노력이지만, 그렇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나 장학금 지원은 행운과 사회적 지원이다. 즉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사회적 지원에 기인한 것이다. 장학재단 지원을 받은 것 역시 그 개인의 노력도 물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행운이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장학재단의 출연자가 누구건 상관없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지원에 기인한 것이다. 장학재단이 설령 한 독지가의 재산을 출연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재산이 성립하는 데에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성공에 대한 사회의 이러한 도움을 현 매사추세츠 주 연방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 나라에서 혼자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아무도. 당신이 공장을 세웠다고? 좋다. 그렇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은 상품을 시장으로 운송하는데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든 도로를 이용하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교육받은 이들을 노동자로 고용하며, 우리가 낸 세금으로 유지하는 경찰과 소방관들로 인해 도둑들이 침입해 훔쳐가는 것을 걱정하여 누군가를 고용할 필요 없이 공장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이 돈을 버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은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지원했기 때문에 그 부는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자 보자. 당신이 공장을 세웠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당신의 훌륭한 아이디어 아니냐고? 좋다! 그 수익의 큰 부분을 가져가라.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다음 세대를 위해 내놓으라는 게 이 사회의 암묵적 계약 아니었나?” (하버드 로스쿨 교수 엘리자베스 워런, 매사추세츠주 연방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2011년 행해진 타운홀 미팅 연설 中)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이러한 연설은 한 개인의 성공에 사회가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을 하기 쉽다.

 

그 원인은 이러한 사회적 도움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사회 전체에 분산돼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소위 ‘멘토’라 불리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나이 많은 완고한 보수파보다 더 완고한 성향을 가질 수도 있다. 즉 그들에게 있어 성공은 사회와 상관없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성취를 막는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변혁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를 보수적으로 유지하면서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령자라서 완고한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육체의 쇠약이 정신의 동맥경화현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완고함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훌륭한 업적을 거둠으로써 성공자가 되었기 때문에 완고해진 것이다. 나이가 사람을 완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사람을 완고하게 만든다. 성공자이기 때문에 완고한 사람은 변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어도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성공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2권" 中)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고, 국가라는 사회를 구성해 살아가며, 세금을 지불하고, 그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이상, 한 사회 내에서 개인이 거둔 성취 중에서 온전하게 그 개인만의 노력으로 성취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에 난무하는 멘토들이 보이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 즉 개인의 노력에 사회적 지원이 더해진, 극히 예외적인 자신의 성취를 누구나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젊은 세대의 성취를 가로막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전체적인 체계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치환시켜버린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다.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의 조성이다. 성공을 거둔, 소위 멘토들이라면 자신의 경우를 일반화해서 젊은 세대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꼰대질’을 할 게 아니다. 대신 젊은 세대가 자신의 성취를 위해 어떠한 형태의 노력이든 기울일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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