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BB·CSAIL·미디어랩 삼각편대 ‘협력과 경쟁’
매사추세츠 캠브리지 = 이철현 기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는 너드(Nerd·세상 물정 모르는 천재) 소굴이죠.”
정수연 MIT 미디어랩 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편 개봉에 맞춰 일어난 소동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스타워즈 신작 개봉을 앞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대학본부 격인 매크로닌 빌딩(10번 건물) 지붕 돔 위에 스타워즈 로봇이 올라와 앉아 있었다.
MIT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비밀 회합을 갖고 이런 엉뚱한 소란을 자주 꾸민다.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은 관습에 따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눈에 띈다. 정수연 연구원은 “이런 자유분방함이 창의적 사고로 이어지고 그게 MIT 학풍을 만드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천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 넘치는 자금 지원, 학과 간 공동 연구 풍토와 결합하면서 MIT를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연구센터로 만들고 있다.
시사저널e는 8월 14~19일 MIT 산하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두뇌·마음·기계 연구센터(CBMM), 미디어연구소(Media Lab)를 찾았다. 인공지능과 로봇 분야 연구실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고 교수와 연구원 등 5명을 인터뷰했다.
MIT는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를 중심으로 두뇌·마음·기계 연구센터와 미디어연구소이 삼각편대를 이뤄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이 세 곳이 자리한 건물도 도보로 2~3분 거리 안에 몰려 있다. CSIAL이 자리한 레이 마리아 스타터 건물은 교내 도로를 사이에 두고 CBMM이 들어 있는 건물과 마주 보고 있다. 스타터 건물에서 코흐 생물학 건물 너머 미디어연구소가 들어있는 와이즈너 건물이 자리한다.
세 연구소는 협력·경쟁하면서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물을 창출하고 있다. MIT 미디어연구소 출신인 스탠 스클라로프 보스턴대 컴퓨터과학 교수는 “MIT는 특히 인공지능 연구 부문에서 신경과학, 인지과학, 컴퓨터공학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학풍을 갖고 있다”며 “이 분위기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연구기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마다 전문 영역과 특성이 뚜렷하다. CBMM은 신경망 등 인간 지능의 신비를 연구해 기계에 탑재할 방법을 찾는다. 인지과학, 생물학까지 아우르며 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 연구 성과물을 축적한다. 이 연구센터는 교수, 연구원 등 126명을 아우른다. 교수나 연구원들이 MIT 소속만 있는 건 아니다. 하버드, 스탠포드, 캘리포니아 대학교 등 미국 내 여러 대학 교수와 연구원이 인간 지능의 신비를 풀기 위해 협업한다.
MIT는 이 기초 연구의 성과물을 CSAIL로 넘긴다. 여기서 MIT 연구 체제의 강점이 드러난다. CMBB 교수가 CSAIL 교수를 겸하게 한다. 기초 연구 성과물을 바로 컴퓨터과학 영역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토마소 포지오 CBMM 교수가 대표 사례다. 포지오 교수는 CSAIL 교수를 겸하고 있다.
포지오 교수는 신경망 연구와 인공지능 응용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힌다. CSAIL은 이 기초 연구를 활용해 알고리즘을 만들어낸다. 시각, 언어, 상식 등 인간 지능의 다양한 영역을 세부적으로 구분해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 미디어연구소는 기업 후원을 받고 상업화할 수 있는 응용 기술을 개발한다.
삼각편대의 중심은 CSAIL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연구 인원, 자원 등이 다른 연구소를 압도한다. 1000명 넘는 교수, 연구원, 학생이 50개 이상 연구그룹으로 나뉘어 인공지능, 시스템, 이론 등 3개 영역에서 100 건이 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이다. 인공지능 연구그룹은 생물체의 지능을 연구해 그 결과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추론, 지각, 행동 등 인공지능 모델과 기제를 개발해 실생활 문제들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
CSAIL 교수진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전문 연구회 회원 90명, 맥아더재단 연구원 7명, 튜링상 수상자 7명 등 컴퓨터과학 연구원에게 수여하는 갖가지 지위와 상을 받았다. 인공지능 50명, 시스템 38명, 이론 24명 총 교수 115명이 연구를 총괄한다. 그 밑에서 온갖 학위 과정을 밟는 연구원과 학생 1102명이 인공지능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인재들이다. 안드레이 바부 CSAIL 연구원은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다. 이 캐나다인 유학생은 이제 갓 서른이지만 인공지능 분야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바부 연구원은 CMBB에서도 연구원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보리스 카츠 MIT 인포랩그룹 교수 지도를 받고 있다. 카츠 교수는 IBM 왓슨과 애플 시리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다. 바부 연구원은 특히 머신러닝과 머신비전, 언어 습득을 연구한다. 바부 연구원은 “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신경망 연구와 컴퓨터공학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미디어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팀은 개인로봇연구그룹이다. 소셜로봇에 인공지능을 탑재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을 만들고 있다. 이 그룹을 이끄는 이는 신시아 브리질 MIT 미디어연구소 교수다. 그는 소셜로봇 연구 분야에선 ‘살아있는 전설’이다. 소셜로봇 연구하려면 브리질 교수 저서부터 훑어야 한다. 그는 소셜로봇 상업화에 관심이 많아 소셜로봇 지보를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브리질 교수는 개인로봇연구그룹이 수행한 17개 연구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일부는 매조지 했지만 상당수는 진행 중이다. 개인로봇연구그룹에는 14명이 연구하고 있다. 브리질 교수가 좌장이고 박사후 과정 1명(박혜원 박사), 박사과정 7명, 석사과정 5명으로 구성돼 있다. 박혜원 박사는 어린이 교육용 로봇, 로봇 사고방식과 호기심 등 2개 이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박혜원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MIT는 학제간 협업을 중시한다. 개인로봇그룹도 심리학, 교육학 등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소셜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MIT는 인공지능 영역에서 학제 간 경계를 허물고 공동·협업 연구를 통해 가장 창의적인 연구에 몰두해 왔다. 지금도 첨단기술 연구 분야에서 이단아로 남아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이단아가 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포지오 교수는 “인간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연산이라면 컴퓨터가 더 잘하지 않나. 인간 지능은 정의하기엔 애매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에 신경과학, 인지과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협업이 필수다. 인간 지능을 이해할 수 있어야 인공지능 발전도 가능하다. 기계는 결국 인간 사고를 본떠야 똑똑해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MIT는 인공지능 연구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