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기술연구소…30개 그룹 350개 프로젝트 수행

 

MIT 산하 미디어연구소 내부 전경 / 사진=이철현

 

매사추세츠 캠브리지 = 이철현 기자

미래를 살짝 엿보고 왔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일갈한 바있다. 이제 고인이 된 이 전설적인 미래학자의 말이 맞다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산하 미래연구소가 미래를 가장 정확히 예측할 듯하다. 미디어연구소가 미래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 최고의 연구소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찰스강 서쪽 강변에 연해 있다. 행정구역상 이곳은 보스턴과 구분해 캠브리지라 일컬어진다. 이곳에서 도보로 한 시간가량 캠브리지 북쪽으로 올라가면 명문 하버드대학교가 자리한다.

15일 캠브리지 캔달 광장에서 찰스강 강변 방향으로 5분가량 걷자 유리벽을 금속 파이프로 두른 E14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벽돌 건물이나 시멘트 건축물 투성인 캠퍼스 내에서 이 건물은 독특한 외양 덕에 돋보였다. 건물 옆에는 미디어연구소를 만든 제롬 와이즈너 전 MIT 총장 이름을 딴 와이즈너 빌딩(E15)이 붙어있다. E15은 하얀 외벽으로 둘러싸인 4층 건물이다. 이 두 건물이 미디어연구소의 보금자리다.

E14은 유리로 내외벽을 둘러 건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진행 중인 연구 프로젝트를 공개해 연구자들이 협업하고 공동 연구하는 것을 장려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정문 역시 유리문이었다. 알루미늄 문고리를 당겨 들어서면 하얀색 대리색 바닥이 빛을 한가득 반사하고 있었다.

 

미디어연구소가 위치한 E14 건물. 이 건물 뒤로 E15 와이즈너빌딩이 붙어있다. / 사진=이철현 기자

로비 한 복판은 30이란 숫자가 차지했다. 미디어연구소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설치물이었다. 그 옆에는 설립자 제롬 와이즈너 전 MIT 총장이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와이즈너 총장은 극초단파 연구로 통신 과학과 공학 발전을 기여한 석학이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과학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핵실험 금지조약 체결과 비준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로비에서 고개를 들면 6층 천정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얀 대리석이 층간을 구분했다. 연구실 역시 유리벽으로 둘러싸였다. 연구실마다 연한 나무색 책상들이 규칙성 없이 흩어져 있고 책상마다 검은색 MSi 노트북과 아이패드가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로 연결돼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개발 중인 기계 장치나 부품들이 한가득했다. 그 옆에는 스탠드형 컴퓨터들이 역시 일정 규칙성이 없이 배치돼 있었다. 비닐로 공간을 구분해 다소 지저분해 보이면서 공간 활용의 자유분방함도 느껴졌다.

미디어연구소는 MIT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첨단기술연구소다. 학과 간 경계를 허물고 공동 연구를 권장하는가 하면 개별 연구를 합치는 등 개방적인 연구 분위기 속에서 미래 혁신 기술을 쏟아낸다. 웨어러블 컴퓨팅, 체감형 인터페이스, 감성 컴퓨팅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미디어연구소는 1985년 문을 열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전 MIT 교수와 와이즈너 전 총장이 세웠다. 비전은 ‘미래 창조(Inventing the future)’다. 당장 시장이 원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고 20~30년 뒤 결실을 볼 아이디어와 기술에 연구 초점을 맞춘다.

설립 초기 ‘괴짜들 집합소’로 여겨졌다. 모토는 “시연 아니면 죽음(demo or die)”이다. 미래연구소는 1985년 집에서 영화를 받아볼 수 있는 데이터 압축 기술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소트프웨어 합성 시스템인 씨사운드(Csound)을 개발했다.

이 뿐만 아니다. 미디어연구소 설립자들은 텍스트를 동영상·음성 파일과 연결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미국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에 위치한 도시 아스펜을 가상 투어하는 아스펜무비맵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 맵은 구글어스보다 25년 앞선다. 연구소는 1990년대 중반 전자우편을 선보였고 웨어러블 컴퓨터 연구를 선도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나오기 훨씬 전에 온라인 소셜미디어를 실험하기도 했다.

미디어연구소는 E14 건물 로비에 창립 30주년를 맞아 제롬 와이즈너 창설자를 기리는 전시 이벤트를 알고 있다. / 사진=이철현 기자

미디어연구소는 1985년엔 세계 최초로 컬러판 컴퓨터 그래픽 홀로그램을 개발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실시간 동영상 합성 홀로그램을 시연하기도 했다. 또 무선네트워크, 웹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들어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탐지하는 센서, 3차원 가상현실,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10초 안에 내려 받을 수 있는 넷사운드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또 감성적 자극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컴퓨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서는 인간 경험을 개선하는 연구에 몰두하며 인간의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다리가 없는 장애자에게 인간 다리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로봇 의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기도했다. 신경망을 분석·통제하는 기술의 연구는 파킨슨병 같은 두뇌 질환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병을 획기적으로 치료할 의료 기술을 아우른다.

지금 미디어연구소에선 30개 연구그룹이 350개 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 접근 방식의 신경 질환 치료부터 첨단 이미지 기술까지 구현이 눈앞에 다가온 프로젝트가 다수다. 연구소는 인간이 살고 배우고 표현하고 일하고 노는 방식을 급진적으로 바꿀만한 과제들을 연구하고 있다.

미디어연구소는 한해 예산 6000만 달러로 운영된다. 기업, 개인 등 회원 80명 이상이 해마다 내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기업 회원은 전자, 엔터테인먼트, 패션, 의료, 장난감, 통신 등 다양하다. 후원 기업과 협업 내지 공동 연구를 장려한다. 미디어연구소는 자체 개발한 기술과 연구 성과물을 기업 회원들과 협력해 MIT 내에서 실험하고 개선한다. 이와 별도로 미디어연구소는 지금까지 수십개 신제품과 150개 이상 스타트업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선 교수, 수석 연구원, 객원연구원 60명 이상이 연구 보조 인력, 객원 과학자 등 150명 이상과 함께 일한다. 이와 별개로 지원 인력 100여명이 시설 관리, 경영 등 연구소 살림을 꾸려나간다. 석사 89명, 박사 75명 총 164명이 다니고 있다. 또 다른 대학 출신 대학원생 30명 이상이 연구하고 있다. 학부생 200명 이상이 해마다 미디어연구소에서 일하다 간다.

30년 역사 내내 이 연구소는 학제 간 경계를 허물고 공동·협업 연구를 통해 가장 창의적인 연구에 몰두해 왔다. 지금도 첨단기술 연구 분야에서 이단아로 남아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미디어연구소 창설자 제롬 와이즈너를 기리는 전시물이 연구소 로비에 전시되고 있다. / 사진=이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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