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비서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통치, 이대론 안돼

 

며칠 전 지인이 불러 나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부 고위직 공무원을 만났다. 이 공무원은 술이 한두잔 들어가자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혹시나 새어나갈까봐 술자리 동석자들이 긴장해야 했다. 장소가 서울 종로 한정식집이라 주변 언론사 기자들도 심심치 않게 출몰하는 곳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 그 얼마 안되는 정보마저 정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보가 왜곡되고 부족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단정했다.

무려 1시간 가량 쉬지 않고 쏟아낸 이 사람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청와대 안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다. 집무실은 일하는 곳이고 관저는 생활 공간이다.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장관 등 부처 고위 관계자나 외부 인사를 만나 보고를 받거나 의견을 청취한다. 관저에선 대통령은 먹고 잔다.”

이건 다 아는 일이다. 대통령경호법인가 뭔가 때문에 청와대 구조까진 언급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나온 발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다른 나라 정상이나 외교 사절을 접견하는 것을 제외하면 집무실에서 대통령을 보기 힘들다. 부처 장관이 뭐 하나 보고하려면 보고서 등 서류를 잔뜩 들고 관저까지 올라가야 한다. 관저 앞에는 큰 거울이 있다. 거울 보고 넥타이 고쳐 매고 들어간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부처 장관들을 잘 만나주지 않는다. 그럼 장관들은 서류를 관저 앞에 놓고 나온다.”

장관들이 쌓아 놓은 서류는 어떻게 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꼼꼼하게 읽고 궁금하게 있으면 전화로 장관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고 한다.

“안종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 등 수석 비서관들이 해당 자료를 1~2쪽으로 정리해 올린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해당 사안에 대해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발언하는 일이 잦다. 엉뚱한 발언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어쩔 땐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황당하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충분하지 않은, 또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해 판단하고 의사결정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겠는가.”

이 인사가 술 자리에서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사람 직위나 직무를 감안하면 술 취해 떠드는 헛소리로 치부하기도 힘들다. 그는 이 박근혜 정부가 탄생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 받는 인사이기도 하다.

이게 사실이면 큰 일이다. 대통령이라면 비서관 뿐만 아니라 부처 장관부터 일반 시민까지 가능한 모든 국민들에게 귀를 열고 자주 만나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주요 정책들은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다. 정책은 정확한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제대로 된 판단은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가 전제 돼야 한다.

술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사람이 많이 취해서 한 말로 치부했다. 그런데 찜찜했다. 이 인사는 다음 약속이 있다고 한정식집을 나서며 술자리 동석자들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인사를 나눈 뒤 차에 올라탔다. 그것도 멀쩡하게.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