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Rise of Robots)'

제목 보고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올랐다. 로봇이 인간 사회를 철저히 해체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미래에 대한 흔히 볼 수 있는 환상을 담은 책을 기대하며 첫 장을 넘겼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환상이 아닌 현실을 말하는 책이다. 로봇을 말하지만, 로봇이 주가 아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난무하는 환상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불평등과 고용 문제를 논한다.

 

저자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해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실리콘 밸리에 창업해서 25년동안 컴퓨터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에 종사했다. 

 

그는 그 경험과 정교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측한다. 그는 이 책에서 로봇이 인간 직업을 지금도 대체하는 과정에 있고, 가까운 미래에는 상위 5% 직종을 제외하고 모든 직업이 대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치사회 구조가 미래에도 지속된다면 그가 예측하는 미래는 확실한 디스토피아다.

사실 ‘로봇의 부상’이라는 주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다. 과거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을 시초로,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그리고 현재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하는 문제까지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에 끊임없는 두려움을 표현해왔다.

고용적인 차원에서 보면 과거 증기기관이나 인터넷이 불러일으킨 혁신은 ‘창조적 파괴’ 였다. 기존 직업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마차를 제조하고 말을 키우는 목장을 사장시켰다. 증기기관은 수많은 수공업 장인들과 잔존하던 중세 길드 시스템을 철저히 파괴시켰다. 여태까지 기술 혁신은 주로 단순노동, 블루 칼라 직종들을 대체했다. 반면에 자동차 공장, 증기기관을 이용한 공장 등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직종을 창출했다.

포드는 “이번은 다르다”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직종이 사라지고 있다. 포드는 인공지능이 화이트 칼라 직종을 1순위로 대체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화이트 칼라 직업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경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화이트 칼라에게 요구하는 작업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분석이 필요한 반복 작업이다. 포드는 인공지능이 증권 애널리스트나 회계사 등 데이터 분석을 요하는 직업들은 쉽게 대체한다고 말한다. 이미 구현된 인공지능으로도 인간보다 월등한 속도로 더 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단순한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직 인간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 개발되지 않았고, 있더라도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이트 칼라 직업들은 대부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만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포드는 궁극적으로 로봇공학이 발달하면 블루칼라 직종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포드는 기계화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만한 거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오프쇼어링이 진행되고 있는 세계에서, 기계화가 진행된다면 그 기술력을 가진 경제 대국들과 기계화 기술이 없는 제 3세계 간 불평등은 심화된다. 경제대국 내에서도 실업자 신세가 된 사람들은 수입이 없기 때문에 구매를 할 수가 없다.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경제가 침체하고 상위 5%만 살아남는 구조가 된다. 전세계적으로 승자독식 현상이 심화된다. 포드는 2013년 개봉한 영화 <엘리시움>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포드는 일부 대기업이 독과점한 정보기술(IT)을  ‘공익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IT 산업이 비교적 단기간 성장한 건, 미국 정부가 실리콘밸리에 천문학적인 세금을 들였으므로 세금 낸 대중이 그 권익을 일부 공유해야 한다는 논리다. 


포드는 근본 해결책으로 기본소득 보장제도를 주장했다. 직장이 없고 구매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경제를 굴리기 위한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제도다. 하지만 일상의 복지정책을 도입하자고 주장해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낙인이 찍히는 한국에서 이 정책이 도입될까. 


책에서 포드가 제안한 사고실험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책을 읽기 전 맛보기로 해봐도 무방하다. 로봇을 로봇으로 보지 않고 외계종으로 보는 실험이다. 외계종이 지구를 침략했지만, 지구 땅을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일하러 왔다.’ 인간이 즐기는 레저, 지적 추구, 오락에 관심이 없고, 사유재산이나 돈에 대한 개념조차 모른다. 따라서 일 하면서 돈도 받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지치지도 않으며 필요하면 일터에서 숙식한다. 성별도 없고 자가번식이 가능하며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그들 삶의 목표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성과에서 존재 의의를 찾는다.

인간은 이들을 처음에 반긴다. 인건비가 들지 않고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여파로 금새 많은 사람들이 실직한다. 직장이 없어진 사람은 시장에서 무엇 하나 살 수 없다. 시장은 이미 자본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을 위한, 고가 사치품 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을 대체한 외계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많은 수익을 창출했지만, 그 수익은 어떠한 혁신으로 일군 수익이 아니라 고용비용을 절감하면서 낸 유지가 불가능한 수익이기 때문이다. 중산층 포함 대부분 인구가 실직하고, 기업이 도산하고, 상위 5% 상류층도 결국 사치품보다 생필품을 찾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오히려 더 극렬히 대립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두려운 미래다. 포드는 현대 사회에서 고삐 풀린 욕망과 부조리한 사회구조가 지속되었을 때 그 미래를 그린다. 허나 아쉬운 점은 있다. 포드는 어쩔 수 없이 논리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진다. “인류 사회 진정한 혁신은 인간 삶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라고 말한 포드는 덧붙여 혁신이 이루어지기 전에 혁신 후 삶의 방식을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예측 자체가 종종 틀리곤 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는 “이번은 다르다”라고 주장하지만,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했던 노동자들도 이번 혁신은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인류 마지막 자존심인지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포드가 생각하는 디스토피아는 쉽사리 오지 않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현실에 기반한 근거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미국 매체 <데일리 비스트>가 “풍부한 증거, 명료한 논리와 경제 분석. 한마디로, 포드가 옳을 수도 있다”라고 책을 평한 것처럼, 디스토피아는 올 수 있다는 느낌도 든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사고실험을 해보자. 외계종은 영토 점거 없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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