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석 서울IR 사장 “한국 기업들 IR 활동은 중진국 수준”

 

한현석 서울IR 사장은 주주행동주의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IR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 정진건 기자

 

 

“한국은 IR(전략적 투자자 관리) 수준이 매우 낮다. GDP 규모는 세계 13위라고 하는데 IR 수준은 중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에 IR활동을 보급·정착시키는데 큰 몫을 한 한현석 서울IR 사장은 한국은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자본시장 발전의 한 척도인 IR 수준은 여전히 매우 낮다고 비판했다. 


“매년 미국 IR협회가 개최하는 국제컨퍼런스에 참가하는데 거기 가서 보면 우리와 격차가 큰 것을 느낀다. 미국 기업들은 대체로 실적 예고(guidance)를 잘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기업 가운데 가이던스를 하는 곳은 10% 미만이다. IR를 정례화한 기업도 20% 미만이다.”


한 사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각종 IR 데이터가 다양하게 나온다. 그걸 보면 외국의 IR는 매우 체계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IR는 거의 주먹구구식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진의 광범위한 투자자 관리 의무를 뜻하는 IR를 한국에선 단지 기업설명회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유상증자를 한다거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든지 필요할 때만 반짝 IR 행사를 하고 만다.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주주와 소통하지 않는다면 신뢰가 떨어져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주총 때도 우리 기업들은 안건처리에 급급한데 워런 버핏은 6시간 이상 주주와 대화를 한다.”

◇헤지펀드 연기금 등 공격 늘어

한 사장은 기업들의 불통이 투자자의 불신을 살 뿐 아니라 앞으로 기관이나 외국인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얼마 전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가 부각됐다. 미국에선 그 같은 기관들의 반대가 매우 많다. 헤지펀드나 연기금 사모펀드 등이 발달해 주주행동주의가 매우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주주행동주의에 대비해야 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조차 반대의견 표명을 시작했다. 더 이상 안이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 이사회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하며, 주주우대 정책을 펼 필요도 있다.”


한 사장은 특히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할 경우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신뢰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공매도 공세가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다. (공격자들은) 주가가 고평가 됐다고 생각하면 공세를 취한다. 그걸 막으려면 평소 투자자들과 소통을 잘 해 회사가 어떤 성장전략을 갖고 있는지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비전, 성장전략을 보여주면 공매도를 하지 못한다. 그게 안 되니 좋지 않은 소문, 풍문과 결합해 공매도가 나온다.”


그는 공매도를 막으려면 사전에 투자자와 소통을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공매도가 나타나면 그 다음 대응은 사후약방문이다. 워런 버핏은 “기업 명성이나 평판을 쌓는 데 20년이 걸리지만 그게 무너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평소 대응이 필요하다. 외국인이 공매도를 주도하는데 외국인 주주에 대한 IR 역시 중요하다.”


대기업들은 전담팀을 두고 IR를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않기에 시장에서 소외되고 쉽사리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한국 증시엔 시가총액 3000억 미만인 스몰캡이 전체 상장 종목의 80%나 된다. 이들 기업엔 IR 전문가가 없고 조직도 없고 CEO의 관심도 낮다. 이 때문에 기관도 무관심하다. 그래서 시장에서 소외되고 저평가 상태가 지속된다.”


한 사장은 이런 기업에 대해 담당 애널리스트도 거의 없는 만큼 당국의 IR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다만 그는 “최근 젊은 CEO들이 늘어나면서 게임이나 바이오 업종을 중심으로 IR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곳이 늘어나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서비스 잘 하니 돈 따라오더라"

한 사장은 한세실업 출신이다. 의류업체에서 큰 그가 IR업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했다.


“서울IR은 1997년 설립됐다. 국내 최초로 IR를 도입한 컨설팅회사다. IR를 국내에 전파하는데 이바지했다. 나는 한세실업에서 IR 담당을 하다가 99년에 이 회사에 조인했다.”


지금 서울IR는 30명이 넘는 인원을 두고 IR과 PR는 물론이고 M&A와 투자유치, 창업 컨설팅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위기에 처했던 회사를 안정적으로 키워가고 있는 그의 경영 노하우는 전적으로 한세실업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14년간 한세실업에서  재무와 IR 기획 홍보는 물론이고 해외업무까지 배웠다.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은 나의 영원한 멘토다. 그 분의 경영 노하우를 여기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한 사장은 리만사태 이후 회사가 아주 어려웠던 2008년 전 오너로부터 서울IR를 인수했다. 


“당시 매출구조는 IPO(기업공개) 의존도가 80%를 넘었다. 리만사태가 터지면서 6개월간 IPO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위기는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다. IR 시장은 커질 것으로 믿고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회사는 (IR 관련) 노하우가 있고 전문 인력도 있고 레퍼런스도 있었다. 그래서 지분 인수를 결정했다. 당시엔 인수 후 3년 정도 고전할 것을 예상했는데 2009년 하반기에 정상화됐다.”


지금 서울IR은 매출의 IPO 의존도가 20%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안정적 수익기반을 갖췄다는 얘기다. 여기엔 그만의 노력이 있었다.


“돈 벌기보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자고 했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려고 미국 IR컨퍼런스에 6년째 참가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렇게 서비스에 주력하다보니 자연스레 성장이 이뤄졌다.”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킬 서비스를 개발하면 매출은 부수적으로 따라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한 사장은 “그러기에 서울IR에는 아예 사업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업태는 서비스업이다. 제조업이 아니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이 회사엔 결재 자체가 없다고 했다. 결재를 하려면 페이퍼워크가 늘어나는데 그 시간에 고객 서비스를 더 하라는 얘기다.

 

◇SNS 통한 IR 지원할 것

한 사장은 초기 IR 컨설팅 업무는 주로 기업설명회를 지원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IR 효과 측정에 강점을 갖고 이 부분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가가 상승했을 때 시장 전체가 상승해서인지, IR 효과 때문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들이 IR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 가서 보니 IR 효과 측정이 아주 발달해 있었다. 서울IR는 효과 측정 모델을 한국 특성에 맞게 적용하고 있다.”


그는 IR의 효과를 주가나 거래량, 애널리스트의 인용 등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정량적 평가방법 외에 정성적 평가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적 평가는 IR 활동의 질적 결과를 말한다. 투자자 시각이나 관점의 변화 같은 것을 포함한다. 특히 미디어 인식조사에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으로 보던 매체의 인식이 IR실시 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확인한다.”


IR의 효과를 봐야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IR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에선 트위터나 링크드인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한 IR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최근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은 이 부분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SNS에 대한 부작용이 크고 땅도 좁아서일 게다. 그러나 향후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