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찬의 영어해방기

 

한 가지 일을 10년간 해 본적이 있는가. 나 같은 경우엔 피아노를 8세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만 10년을 배웠다. 취미였다. 나중에는 어렵고 난해한 곡도 곧잘 치던 기억이 난다. 

 

‘아웃라이어’를 쓴 말콤 글래드웰도 하루 3시간씩 10년간 노력하면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얻게 된다고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취미로라도 테니스나 발레, 비보잉, 역사공부, 포토샵 등 무엇이든 10년간 정기적으로 배워웠다면 당신의 실력은 안 봐도 뻔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영어를 몇 년 동안 배웠는가.

 

정규 교육과정을 합치면 12년, 대학을 나오거나 토익학원을 다녀본 적이 있다면 그 이상일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우물만 팠어도 우물 수십 개가 나올만한 시간을 투자한 당신의 영어는, 지금 안녕하신가.

 

당신 영어가 안녕한지 한 번 시험해 보자. 다음에 나오는 세 개의 한글 단어 중 한 단어라도 영어로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은 영어를 언어로서 사용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그 단어는 다음과 같다.

 

샤프연필, 화이트, 소화기

 

하나라도 이야기했는가? 그렇다면 훌륭하다. 하지만 필자는 영어강사로 3년을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그동안 물어보았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열 명 중 두 명이 채 안 됐다.

 

학창시절 샤프랑 화이트 안 써본 사람 있나. 그리고 언제나 화재 조심, 산불 조심을 외치며 소화기 사용법까지 어렸을 때부터 꾀고 사는 우리다. 이렇게 평생을 함께해온 물건들을 정작 10년간 영어공부하면서 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다. 인수분해공식처럼 식으로 떨어지고 정답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영어는 소통이다. 상대방과 내가 서로의 음성으로 추는 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내 말과 생각을 전하기 위해 부지런히 춤 연습을,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상황을 가정하고, 똑같은 소리를 내 보며 반복 연습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책만 봤다.

 

사람은 태어나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 만 3세쯤이 되면 이미 성인들이 구사하는 일상언어회화의 70%를 듣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만 3세면 지금 한창 말하기에 물이 오른 KBS 육아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서준이와 서언이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아는 어휘는 300단어도 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 할까.

 

아이들이 단순히 어려서가 아니다. 자신의 반경 1미터 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모자로서 관계를 맺고, 하루 중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이 엄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라는 말을 제일 먼저 익히지 않으면 아기 입장에서는 생활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 라는 단어를 배운다. 그리고 나서 ‘아빠’, ‘까까’, ‘맘마’, ‘저거’, ‘아니야’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필요에 의해, 가장 자신과 가까운 것부터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습득효과는 배가되고, 활용도는 높아진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본능적으로 학습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또다 른 언어학습, 영어 학습은 어떠한가.

 

confirm(확정), reservation(예약), technology(기술) 같은 비즈니스 용어는 꾀고 있지만 정작 자주 쓰는 표현, 내 주변 사물들인 소화기, 샤프, 화이트는 영어로 못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매년 6조원이 넘는 돈이 영어 사교육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우리가 어릴 적 한국어를 배웠을 때의 방법과 태도, 노력을 더한다면 6조원이 아니라 6천원도 없어도 될 돈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법과 책, 단어 받아쓰기에 갇혀 허송세월했다. 남을 이기고 올라가는 데에, 무언가에 합격하고 어떤 점수를 받기위해서만, 형식적으로 공부해 왔다. 그동안 너무 많이 돌아왔다. 이젠 영어에서 해방될 때다.

 

우선 영어단어학습법부터 익히자. 영어학습단어 우선순위는 당신이 단기적으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영어를 정말 잘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내 반경 1m 이내에 있는 사물들부터 시작해 보라. 내가 평생 사용하고 함께해 왔지만 정작 영어로는 모르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데, 이것은 영어로 Allergic rhinitis 이다. 내가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미국이나 해외의 병원에서 관련 약을 처방받고자 할 때, 내 증세를 “아이 해브 훌쩍훌쩍”이라고 말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어를 알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을 빨리 끝낼 수 있다. 

 

여러분도 여러분 주변에 있는 단어부터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고 익힌다면 당장의 영어회화가 나아질 것이다. 당신이 어학연수를 간다면 친구에게 “Can I borrow your white?”하고 화이트 라는 콩글리쉬로 그를 당황시킬 필요 없이 “May I borrow your whiteout?”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소화기를 영어로 모른다면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는 레스토랑에 불이 났을 때 “Where is 슉슉?” 하며 손짓 발짓을 다 해서 소화기를 표현해야 했을지 모르지만, ‘fire extinguisher’ 라는 단어를 알면 이 표현은 3초안에 말할 수 있다. 

 

영어는 결코 어렵지 않다. 평생 책상을 떠난 적 없이 수영이론을 공부해 학위를 받은 수영학 박사 병맥주 씨와 서울수영장 등록 3개월 차 초등학생인 11살 김물개가 50m 왕복 수영대회를 한다면 당신은 누구의 승리에 돈을 걸겠는가? 나는 후자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자처럼 영어공부를 해왔을지라도 이제 후자가 되면 될 일이다. 

 

우선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하자. 반경 1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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