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대중소기업 상생법에 강제력 부여

 

골목상권 지키는 크라우드 펀딩인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 홍보물. / 사진=와디즈

 

지난해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6800만원을 모아 학교 옆 골목 햄버거가게를 회생시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고려대 안암동 캠퍼스 앞에서 15년간 영업한 영철버거가 주인공이다. 영철버거는 2004년부터 매년 장학금으로 2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내에 대형 패스트푸드점이 두 개나 들어서고 인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서면서 쪼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가게는 지난해 여름 문을 닫았다.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영철버거의 폐업은 단순히 한 자영업자의 폐업이 아니라 안암동 상권의 위기”라며 “오랫동안 학생들 사랑을 받았던 가게마저 대기업 프랜차이즈 진출, 재개발 탓에 사라져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에는 556만3000명의 '영철버거 사장님'이 있다. 2013년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7.4%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31개 중 네번째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원인을 조기퇴직, 취업난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특별법이 중산층 생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유다. 

 

현행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은 영철버거와 같은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설정하고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해당업종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탓에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소기업은 버틸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해 울며 겨자먹기로 대기업과 합의를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기업이 사업조정 권고를 어겼다고 해서 벌칙조항을 적용시킨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


19대 국회에서도 백재현 의원, 오영식 전 의원 등이 동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정부와 여당의 반대가 거셌다. 20대 국회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우원식,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법안 개정안과 관련법안을 발의했다.

◇반시장주의 정책 vs.사회적후생 오히려 증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중소기업 적합업종 특별법을 발의했다. 적합업종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들이 해당 사업을 중소기업이나 중소상인에게 이양할 것을 권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청장이 강제력을 발휘해 사업을 이양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내용이 골자다.

우원식 의원은 “현행법은 반쪽짜리법”이라며 “대기업의 사업이양의 경우 권고적 효력만을 가질 뿐이어서 실효성 측면에서 대단히 미흡하다”고 말했다. 또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동반성장위원회나 중소기업청이 사실상 중간에서 합의를 종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안이 대기업 역차별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문명국가라면 모든 걸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제한한다”며 “대기업에 주력업종을 중소기업에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엄격한 심의를 거쳐 선정한 업종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중산층 생업들 위주로, 굳이 대기업이 하지 않아도 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선정하니까 역차별이 될 수 없다. 다만 무분별한 침범에 대해 제재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적용되지 않는 업종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청장이 사업조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심상정 의원은 해당 법안을 발의하면서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어 중소기업, 중소자영업자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경제주체간 균형발전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며 “상생협력 모델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의 실효성을 높여 양극화를 완화하고 경제주체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이 강제력 확보에 집중했다면 심상정의원은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업종도 법의 취지에 맞다면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보여줬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이므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특별법안 통과가 유리해졌다”며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도 기대하고 있다. 기존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에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독려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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