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영어회화 능력 길러...학원 스카웃 제의 거절 뒤 SNS 기반 ‘유시찬 잉글리쉬’ 창업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벤처회사. 먹색 반팔티를 입은 영어 강사가 던진 질문에 20여명 직원들이 일순간 벙어리가 됐다. 수초간 정적이 흐른 뒤 유시찬(27) 강사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뗐다. 그는 낭랑한 목소리로 “이게 영어 교육을 10년 넘게 받은 여러분의 현실”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유씨는 온·오프라인에서 가장 뜨거운 영어 강사 중 한명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간 그의 영어강의 동영상에 취업을 앞둔 대학생부터 직장인들까지, 남녀노소가 공감 버튼을 눌렀다. ‘영어지옥’ 대한민국에서 유시찬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는 “강남 사교육을 통해 토익 990점을 맞은 수재도 막상 회화수준은 미국 8살 꼬마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며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런 유씨도 12주에 걸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교육이다. ‘유시찬 잉글리시’는 대한민국 영어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유씨를 만났다.
“1000만원 부모에게 진 마음의 빚, 18살 처음 영어에 미쳤다”
유씨 10대 전반전에 영어는 없었다. 그 자리를 메운 건 온라인 게임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정도가 여느 10대와는 달랐다. 끼니까지 걸러 가며 하루 16시간씩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고심하던 부모님은 중학생이 된 유씨를 캐나다 밴쿠버로 보냈다. 연수기간은 5개월.
영어가 입에 붙기엔 짧은 기간이었고 유씨는 캐나다에서도 엇나갔다. 그는 “캐나다도 텃세가 있더라. 컴퓨터에 걸린 암호를 풀고 게임을 했다. 친구들끼리 다퉈서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며 파란만장한 캐나다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냈다.
유씨가 캐나다에서 허송세월하는 사이 부모님의 허리는 휘었다. 목회활동을 하는 탓에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연수비용 1000만원은 고스란히 빚이 됐다. 유씨는 18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영어공부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 그를 더 치열하게 채찍질했다. 게임 ID를 삭제하고 손을 댄 건 CNN 카세트 테이프였다.
유씨는 “8년 뒤 8살 난 미국 꼬마아이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자. 이게 처음 목표였다. 그래서 하루 10시간 CNN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CNN 방송을 미국인 부모님이라 여겼다. 유씨는 격투기선수 추성훈 딸 추사랑을 예로 들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도 한국어를 자주 접하다보면 특별한 교육 없이도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얘기였다.
“내가 다른 학원 강사와 다른 이유? I was there”
유씨는 목표를 이뤘다. 현재 그의 영어 실력은 미국에 8년을 거주한 유학생보다 낫다. 날고 긴다는 서울 강남 영어 학원에서 인정한 수준이 그렇다. 순수 독학으로 이룬 실력이다.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학원가와 영어교육관련회사에서 정직원 제의가 이어졌지만 유씨는 프리랜서 영어강사의 길을 택했다. 자유가 제한받는 순간 ‘내가 나’일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유씨는 “회사라는 화살이 빗겨가서 행운이다. 학원 소속강사가 됐다면 하루 10시간을 일해야 하더라. 자유가 제한받는 순간 창의력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세상에 나갈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 보이고 싶다. 지금은 1억을 줘도 사원이 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유씨는 2014년부터 SNS와 영상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직접 제작한 1분 내외의 강의 동영상에는 항상 수백 개의 ‘좋아요’가 눌린다. 유씨가 12주에 걸쳐 진행하는 오프라인 강의인 ‘유시찬 잉글리시’를 수강한 학생이 유씨와 함께 영상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수강생이 일종의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것이다.
유씨는 기존 영어 학원 강의와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I was there(내가 거기 있었다)”라고 짧게 답했다. 영어가 싫었던, 20대까지 영어를 못 했던, 토종한국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어회화 강사가 외국대학을 졸업하거나 교포 출신인 것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영어 공포증’에 공감할 수 있기에 ‘힐링법’ 또한 전수할 수 있다고 했다.
유씨는 “영어로부터 자유롭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마트 가서 양배추를 사고, 외국인 친구가 인사를 했는데 도망가지 않는 것”이라며 “수강생들을 태아라고 생각한다. 12주차 강의 목표는 미국인 3세 아이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영어실력을 확장하면 된다. 옥수수 심고 3일만의 싹이 나길 바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시찬-영어≠0”
영어로 이름을 알린 유씨지만 꿈은 영어가 아니다. 10대 시절에 게임에 빠졌고, 20대 영어에 미쳤듯 앞으로 어떤 다른 분야가 유씨를 끌어당길지, 유씨 자신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 재밌는 것을 해야 열정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유씨는 열정이 부(富)를 담보하지는 않지만 인생을 변화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시찬이 곧 잉글리시는 아니었음 한다. 요즘에는 일본어에 꽂혀서 과외를 받고 있다. 무작정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금세 빠져 익히게 된다. 새로운 호기심이 중요하다. 그것이 영어든 일이든 재밌는 것을 찾고 싶다. 성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인생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