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알짜자산 과잉감축 말아야…잡쉐어링으로 인력감축 최소화를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 사진=싱가포르 국립대

대우조선해양의 성장사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지난 197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강권에 못 이겨 김 회장이 옥포조선소를 인수했을 때의 모습은 땅만 파놓은채 공사가 중단된 이름뿐인 조선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장차 이 곳에서 항공모함까지 건조할 꿈을 갖고 김 회장을 다그쳤다고 한다. 자금, 인력, 기술, 투쟁적인 노조까지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김 회장은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대우조선을 세계 2위의 조선업체로 키워냈다. 

 

그런 대우조선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2000년대들어 닥친 조선업 호황으로 엄청난 호시절을 누리기도 했지만 그런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은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강력한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대규모 분식회계와 기업 비리가 드러나 전임 사장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는 운명을 맞고 있다.

 

대우조선의 행로를 보는 김 회장의 안타까움도 클 것이다. 그가 느끼는 소회와 위기의 조선업을 구할 처방을 그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언론 인터뷰를 포함한 대외 활동을 지난해 10월이후 일절 중단하고 있는 탓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를 찾게 됐다. 신교수는 ‘김우중의 대변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김회장의 생각을 잘 읽고 지금도 김회장과 자주 접촉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우그룹의 성장과 해체 과정의 비화를 담아내 화제가 됐던 ‘김우중과의 대화’를 지난 2014년 펴내기도 했다. 신교수와 전화 대담을 통해 대우조선사태와 국내 조선업의 미래에 대한 김회장의 생각을 가늠해봤다.

요즘 대우조선 사태를 보며 김우중 회장이 느끼는 회한도 클 것 같다.

 

무척 착잡할 것이다. 대우조선이라는 세계적 회사를 만들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큰 희생이 따라야 했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김회장은 정부가 처음에 약속했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계속 늘려야 했다. 인수한지 10년동안 이자만 7200억원을 냈다. 1989년에 정상화시킬 때 사재와 계열사 매각을 통해 7200억원 가량을 추가로 조달했다. 그렇게 세계2위의 조선사가 만들어졌다. 그런 대우조선이 다시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대우가 원래 부실경영을 하던 사람들이고, 분식회계에도 능하다보니 결국 터질 일이 터진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니 김회장이나 대우맨들로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대우조선 부실은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을까. 

 

산은이 인수한후 대우조선의 인사, 재무 등 모든 경영권이 그 쪽으로 넘어갔다. 최고경영자(CEO)는 대우 출신에게 맡겼다고 하지만 인사권은 산은이 행사했다. 대우가 계속 경영했다면 그 자리에 있기 어려운 인물이 사장을 맡기도 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산은 부행장 출신 등이 계속 맡았다. 인사와 재무에 전권을 갖고 있던 산은과 감독권을 지닌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지 왜 옛 대우그룹을 탓하나.

 

남상태 전사장, 고재호 전사장 등 전임 경영자들이 횡령 및 배임수재, 3년간 5조4000억원대에 달하는 분식 회계 등으로 줄줄이 사법처리되고 있다. 이런 일탈행위가 장기간 방치됐던 헛점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횡령과 배임수재는 대우그룹 시절에는 없던 일이다.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금융감독위원회, 감사원, 검찰에서 대우 관계자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개인비리를 찾아낸 것이 없었다. 부과된 추징금은 개인 비리가 아니라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당시 외환관리법을 위반하며 그룹 내에서 돈을 돌린 행위에 대한 제재다. 그래서 법원도 구차하게 ‘징벌적 추징금’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우 시절에 없던 개인비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정부와 산은의 인사 및 감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대우 사람들은 분식회계 액수도 과장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분식회계는 누적개념이라서 3년치를 합산할 수 없다. 마지막 1년치만 보면 된다. 그런데 ‘3년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납득이 안된다. 

 

대우조선만 분식회계가 문제된 것은 조선 빅3중  더 부실했기때문이라기보다는 지배구조 차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수주 취소가 벌어지고, 또 클레임이 제기됐을 때 주인이 확고한 현대, 삼성은 빨리 대응해서 회계에 반영시켰지만 대우는 회계 반영이 늦었기 때문에 분식회계로 비화되지 않았나 싶다.

 

국내 조선업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조선업계의 경영이 악화된 주된 원인이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업황이 갑자기 나빠진 이유가 가장 크다. 전세계 모든 조선사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상구조물 세계 1위였던 싱가포르의 케펠(Keppel)도 똑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벌크선은 몰라도 고부가 분야는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세계 1,2위 조선사들이 한 순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는 없다.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조선 3사 체제는 유지하되 주채권은행 주도로 자구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구계획의 골자는 조선 3사가 나란히 생산설비를 30%씩 줄이는 것이다. 옳은 방향인가.

 

경기가 극도로 안좋아 비관적인 분위기가 넘칠 때 설비를 감축하면 나중에 후회하기 십상이다. 과잉조정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에도 비관론에 빠져 알짜 자산을 많이 매각했다가 얼마나 큰 손실을 봤는가. 경기가 회복될 때 돈 벌 기회를 놓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뼈아프다. 경쟁자들을 키워주는 결과도 된다. 경기가 바닥일 때 투자하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법이다. 

 

과잉 여부와 정도는 지금 시점의 상황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해 동태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산매각을 결정할 때에는 당사자들 간에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 국익의 관점에서 정부가 잘 판단해야 한다. 자산을 사려는 사모펀드 등 투자자들은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 회사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강조하고 알짜 자산을 가능한 싸게 사려고 한다. 그러나 경영진이나 노조는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는 자산을 지키고 싶어 한다. 정부는 중간에서 잘 판단해야 한다. 대우조선의 경우에는 정부가 회사 주인이고 구조조정과정을 직접 파이낸싱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알짜 자산을 매각하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국가경제의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국내 조선업의 빅3 체제를 빅2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도 대형국영조선소 6곳을 3곳으로 통폐합하면서 고가 선박 제조로 방향을 틀었다. 

 

빅2체제가 빅3체제보다 무조건 낫다고 할 수는 없다. 통합한다고 선주들이 그대로 따라 오는 것도 아니다. 선주들이 중국과 일본 경쟁사로 옮겨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2체제가 바람직하다고 한다면 외환위기 때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합친 것처럼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 인수자를 결정해야 한다. 

 

조선사의 막대한 인력처리도 난제다. 조선3사 노조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구조조정과정에서 고용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김우중 회장이라면 답이 명확할 것이다. 외환위기때도 노동시장 유연화니 인력조정이니 논의가 무성했다. 정리해고가 그때 처음 도입됐다. 김회장은 총수중 유일하게 정리해고에 반대했다. 선진국처럼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마당에 해고하면 근로자들은 살아갈 방도가 없다. 정 버티기 어렵다면 일자리를 나누는 잡쉐어링(Job Sharing)으로 일자리를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 고용주의 이해뿐아니라 노조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다.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지금 청년실업 해소 등 일자리 창출사업에 정부가 돈을 많이 쓰지만 성과를 보기는 어렵다. 이미 있는 좋은 일자리를 지키는게 더 나은 정책이다. 신생기업을 대우조선과 같은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키워내는 일은 엄청난 노력과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과연 가능할 지조차 의문이다. 과잉조정을 해서 그런 기업을 망치고 일자리를 없애는 것은 두고 두고 후회할 우리 경제의 아쉬운 손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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