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이군섭씨, 대가 화풍 재현하는 인공지능 개발

 

이군섭 쿼트 공동대표. 사진=정한결 기자

 

인간만이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까? 영국 종합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25일 자 인공지능 스페셜리포트에서 “인공지능은 반복적이지 않은 (non-routine) 직업을 대체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인공지능이 특정 업무를 반복 수행하는 직업을 없애지만 창의성을 발휘하는 예술가 같은 직업군은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미 예술 창작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12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소재 개인 작업실에서 청년 사업가 이군섭(32)씨를 만났다. 이씨는 스타트업 쿼트(Quote)를 공동대표로 운영하며 증강현실, 가상현실, 영상·사진 제작 등 그래픽 디자인 업무를 수주 받아 납품한다.

이씨는 요즘 인공지능을 이용해 유명 화가들 스타일을 재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예인 박보검씨와 고준희씨 사진을 르느아르나 고흐의 화풍으로 다시 그려낸다. 

 

인공지능이 고준희씨 사진을 르누아르 화풍으로 그림. 고준희(좌), 르누아르(중), 완성본(우)

쿼트사는 메사추세스공대(MIT)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소스코드를 활용한다. 고흐 그림 중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1889)을 학습하라고 주면 인공지능은 머신러닝을 통해 고흐 작품의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분석이 완료되면 인공지능은 고흐 작품 패턴을 박보검씨 사진에 반영해 그림을 완성한다.

 

인공지능이 박보검씨 사진을 고흐 화풍으로 그림. 박보검(좌), 고흐(중), 완성본(우)
그림 한 장만 분석 가능한 게 아니다. 컴퓨터와 그래픽 카드 성능만 갖춰진다면 서로 다른 대가들이나 한 대가의 모든 작품을 분석해 새 사진이나 영상에도 학습한 패턴을 입힐 수도 있다.

이씨는 “기존 방식대로 하면 유능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붙어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일이다”고 밝혔다. 사람이 작업하면 그림마다 패턴을 파악하고 손으로 편집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3분만에 해당 작업을 끝낸다.

이씨는 사회적 이슈를 새 플랫폼에 담고 싶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지만 새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법을 익혔다. “프란시스코 고야 등 여러 화가들이 사회적 이슈나 부조리를 그려 냈다. 그 대가들이 한국 사회의 실상을 보면 어떻게 그려낼까 궁금했다.” 이씨는 궁극적으로 소셜 펀딩을 받아 사회 이슈를 회화로 재해석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한다.

쿼트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상업적으로 개발할 여지도 많다. “MIT가 공개한 오픈소스를 사용한 터라 기술적 차별은 거의 없다. 대신 사진을 가공하고 연출하는 과정에서 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 작업도 예술적 창작 행위다.”

러시아 프리즈마(Prisma) 어플리케이션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을 앱에 올리면 대가들 화풍에 맞게 사진을 각색한다. “프리즈마는 정해진 대가 10여명 템플릿만 사용 가능하다. 난 사용자가 직접 올리는 템플릿으로도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싶다.”

인공지능은 만화가 화풍이나 패턴도 학습할 수 있다. 이씨는 유명 만화가도 이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화가들도 그림 그릴 때 특정 패턴을 넣는다. 번거롭게 그리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사진만 보고 만화가 고유 패턴을 따라 만화를 그리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다.”

“인공지능이 예술가도 대체한다는 말이 있다. 아론(AARON)처럼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도 있다. 난 다르게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더 발전해도 우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협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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