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장밋빛 전망과 함께 착공...수주절벽에 일감감소하자 최길선 회장 책임론 일어

울산 방어진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 사진=박성의 기자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가 폐쇄 위기에 처했다. 수주절벽에 직면한 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에 배치할 예정이던 건조물량을 울산 조선소로 재배정함에 따라 군산 조선소의 도크 공백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군산조선소가 폐쇄될 시 하청업체 줄도산이 불가피해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산조선소 설립 당시부터 수주 부진 시 도크 공백 사태는 예고돼 왔다”며 최길선 회장 등 경영진의 판단 착오가 문제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까지 군산조선소에 근무하는 고연차 생산직 직원 다수가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조부위원장은 “현대중공업이 긴축경영을 이유로 각종 수당을 줄였다. 이 탓에 군산 조선소에 근무하는 높은 연차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줄지어 고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10일까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직원 60명이 희망퇴직으로 직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직원들은 최대 40개월치 기본급과 자녀학자금 등을 위로금으로 받게 된다. 이번에 희망퇴직을 신청한 직원 대부분이 1956~58년생 고령 노동자다.

조선소 핵심인력인 고연차 직원 다수가 희망퇴직을 신청함에 따라 군산조선소의 건조기술력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오랜 기간 선박 건조 노하우를 쌓아온 연차 놓은 직원들이 잇따라 사표를 제출한 이유는 조선소 내 일감이 점차 바닥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군산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선박은 총 16척이다. 이들 선박을 내년 7월까지 선주에게 인도하면 조선소 내 선박건조물량은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말부터 내년 9월까지 군산조선소에서 배정된 LPG선 2척은 울산으로 재배정됐다.

군산조선소 관계자는 “사측에서 군산조선소는 내년 7월까지 건조물량이 있지만 울산에는 물량이 없다고 강제적인 재배정을 요구했다”며 “우리로선 사측 지시에 반할 방법이 없다.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고연차 직원들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감과 인력이 동시에 줄자 업계에서는 군산조선소 폐쇄가 코앞에 왔다는 잿빛 전망이 흘러나왔다. 물론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도크 폐쇄 계획은 없다. 근거 없는 낭설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자구안에 인력 구조조정과 비주력 사업 매각계획은 있지만 건조 시설 매각 계획 등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의 해명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당장 먹거리가 부족해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일거리가 없는 조선소를 끝내 유지하겠다는 것은 ‘현실도피’라는 분석이다. 조선호황기에 무리하게 군산조선소를 개설해 지금과 같은 수주절벽을 대비하지 못한 경영진에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산조선소는 2008년 7월 착공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군산조선소가 도내최대 수출액 등을 경신할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군산조선소 착공식에서 전북도가 밝힌 노임규모만 5000억원, 신규 고용규모만 5000명이다.  

지난 3월 21일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 창업석의 15주기에서 추모사 낭독하는 최길선 회장. / 사진=현대중공업

 


당시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은 “군산에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하게 된 것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과 군산조선소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곳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사내 8400여명과 50개 협력사 2500여명 등 1000여명을 고용하겠다고 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군산조선소가 폐쇄된다면 이 같은 공약은 고스란히 ‘군산의 그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 등 현대중공업 측 말만 믿고 조선소 부지를 내준 전북도도 낭패를 보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체의 생산설비 중 군산조선소 존재감이 가장 바닥이라고 말한다. 현대중공업 수주 규모가 급감한 상황에서 울산 대신 군산조선소에서 배를 건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현대중공업이 근시일내 울산조선소 건조범위를 뛰어넘는 수주를 기록하지 못한다면 군산조선소 폐쇄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우리나라 조선업이 어렵다고 해서 설비자체를 줄이는 것은 무리다. 추후 조선건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장 설비를 줄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며 “다만 유일하게 폐쇄까지 고려되는 것은 군산조선소다. 현대중공업이 (건조력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산에 도크를 판 이유를 알기 어렵다. 수주상황이 어려워진다면 현대중공업은 시설감축도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