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세계 10대 항공사 평균수준 못 미쳐...회사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 피해 일반직에게 전가 될 것"

 

28일 오후 2시 시청 옆 10번 출구. 뙤약볕 아래 금빛 넥타이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군중 150여명이 3열 종대로 섰다. 검은 모자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대한항공 서소문빌딩 앞에 늘어선 이들은 대한항공 조종사들이었다.

이날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KPU)은 '임금정상화를 위한 윤리경영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서소문에 있는 대한항공빌딩 앞에서 시위를 벌인 건 2000년 노조설립 결의대회 이후 16년만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창공이 아닌 서울 빌딩숲으로 몰려든 것은 임금 탓이다. 조종사들은 대한항공이 치솟는 이익을 조종사들과 나누려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한항공이 경영난을 말하고 있지만 항공 업황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조종사들의 파업을 둘러싼 내·외부 시선은 싸늘하다. 조종사들이 내건 임금인상률은 37%다. 일반노조가 사측과 합의안 임금 인상률 1.9%의 약 20배다. 이 탓에 대한항공 일반노조와 사측은 “조종사 1000명 파업은 회사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려한 행태”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파업에 나선 조종사들은 높은 임금인상률에는 실질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가 동시에 담겨있다고 말한다. 임금을 구호로 내걸었지만 사측의 폐쇄적 경영행태와 비행 안전문제, 조종사를 바라보는 조양호 회장의 부정적 인식 등이 이번 쟁의 배경이라는 주장이다.

집회가 끝난 28일 오후 4시, 이규남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위원장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김포 본사에서 만났다.

임금인상률 37%, 근거가 무엇인가.


“대한항공이 벌어들이는 돈 보다 조종사 임금이 적다. 임금은 상대적인 것이다. 중국 항공사 매출규모는 대한항공보다 열악함에도 연봉은 높다. 세계 10대 항공사가 지급하는 평균적인 연봉과 비교해도 대한항공 조종사 임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회사는 호황이다. 37%라는 숫자가 과해보이지만 그만큼 지금까지 우리가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사측은 부채규모가 높고 한진해운 사태 등으로 경영이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 분기 대한항공은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불황이라고 하는데 공항을 가보면 매일 붐빈다. 회사는 커나가고 있다.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결과다. 영업이익 배분이 경영진에 편중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애사심도 갖을 수 있다.”

일반 노조는 조종사 노조의 높은 임금인상 요구가 회사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합을 이끌고 있는 이들의 의견이 곧 현장의 목소리는 아니다. 조종사들은 같이 일하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이야기를 매일 듣는다. 오히려 일반 직원들은 우리를 응원한다. 자기들은 힘이 없기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조종사 노조가 이참에 회사를 바꿔 달라는 것이다. 기죽지 말고 조금 더 세게 밀어붙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28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집회 현장 옆에서 일반 노조원이 항의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박성의 기자

 

회사 내 또 다른 조종사 노조인 '조종사 새노조'는 쟁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남의 조합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5년 임금협상에서는 우리와 같이 행동하지 않기로 했지만 같은 비행을 하는 동료들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조합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2016년 임금협상에는 같이 나설 계획이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쟁의에 관해 의견 차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여론 전수조사 등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게 내 생각이다.”

대한항공에 대한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회사가 흔들리면 경영난 악화는 필연적이지 않나.


“한진해운 사태를 보라. 영업환경이 좋을 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영업에 타격을 받더라도 잘못이 있다면 고쳐야 맞다. 호황일 때 미리 점검하고 막을 건 막아야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은 배임 및 일감 몰아주기 행태가 계속 벌어진다면 부채비율은 커질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직들한테 갈 것이다.”

배임 및 일감 몰아주기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나.

 

“구체적 자료가 있었다면 청원이 아니라 검찰에 고발했을 것이다. 다만 경제개혁연대에서도 이미 한진그룹 계열사 재무관계에 대한 문제점을 짚은 바 있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대한항공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회사 경영진과 자회사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청원했지만 국세청에서 세무조사에 착수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이 아닌 수많은 이들이 모인 조합에서 요구한 청원이다. 회사에 투명 경영을 바란다는 요구다. 국세청이 이 같은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국세청을 상대로도 집회를 계획할 수 있다. 청원과 별개로 추가적인 자료 확보를 통해 회사를 계속 압박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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