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사들 법무법인과 계약 맺고 무리한 저작권 관련 공문 발송 논란

한 법무법인에서 보낸 개인사업자에게 보낸 저작권 침해 관련 공문 일부 내용. / 사진=엄민우 기자

 

 

영세 여행사를 운영하는 신아무개씨(35)는 최근 한 편지를 받고 황당했다. 한 법무법인에서 글씨체 저작권을 위반했다며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특정 글씨체를 적용한 홈페이지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증거자료’라며 첨부돼 있었다.

최근 인터넷상에 글씨체 저작권 침해 사냥꾼 주의보가 내려졌다. 과거 사진 저작권을 가진 곳들이 블로그 등을 돌며 사진 저작권료를 받으러 다녔던 이젠 글씨체 보유 업체들이 나선 것이다. 업체들은 법무법인을 고용하고 법무법인이 직접 글씨체를 사용한 곳들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방식이다.

정당한 저작권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법무법인들까지 동원돼 글씨 사용 신청서까지 첨부하는 방식으로 영세 업체들을 압박하는 행태에 대해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아무개 사장은 “나야 저작권법 위반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무슨 법무법인이 글씨체 사용업체 신청서까지 첨부해서 보내는지 황당했다”고 꼬집었다. 인터넷 상에는 신 사장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의 불만토로 글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었다.

본지는 한 법무법인이 신 아무개 사장에게 보낸 내용증명 문서 전량을 입수해 내용을 들여다봤다. ‘○○사 서체 프로그램에 관한 저작권침해 관련의 건’이란 제목의 이 공문은 총 6페이지로 돼 있었다. 해당 법무법인은 “귀사는 ○○사 서체 프로그램 사용자로 등록되지 않았음에도 해당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서체를 사용했다”며 “연락이 없는 경우 법적 절차를 취할 것이며 형사처벌과 별도 손해배상금 및 소송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린다”고 적혀 있었다.

해당 법무법인은 글씨체가 적용된 화면 캡쳐 화면을 ‘채증자료’라는 이름으로 첨부했다. 신아무개 사장은 “화면 캡쳐는 증거자료가 될 수 없고 해당 글씨체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글씨체와 사진을 섞어 외부에서 창작물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법 위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법무법인도 이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밌는 것은 마치 업쳋럼 내용증명 문서 마지막에 해당 글씨 라이선스 등록 신청서를 첨부한 것이다.

확인결과 당국에서도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저작권 업무를 총괄하는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폰트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은 있어도 글씨 모양에 대한 저작권이란 것은 없다”며 “폰트 관련 저작권을 가진 회사가 법무법인과 포괄적 계약을 맺기 때문에 무리하게 저작권 침해 사항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폰트 사들은 일괄적으로 모든 저작권 침해 소송에 대해 법무법인에 권한을 위임하고 위반사항을 최대한 많이 찾아 합의금을 받거나 폰트를 구매하게 하면 거기서 수임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저작권과 관련해 형사처벌 등과 관련한 용어가 들어간 문서를 받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며 “저작권과 관련해 저작권위원회로 상담을 요청하면 관련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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