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분사계획 두고 노사 대립 평행선…정부 중재자 역할 불가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위기극복 노사 간담회'에 참석해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사진=뉴스1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이 좌초위기에 몰렸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대우조선이 2006년부터 해마다 목표 금액을 미리 정해두고 분식회계를 저질러온 것으로 23일 잠정 결론 내렸다. 손실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며 회사 신뢰도는 바닥을 치게 됐다.

대우조선에 악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노사 관계도 악화일로다. 경영진이 자구안 이행을 조건으로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노동조합이 파업카드를 들고 나왔다. 채권단은 노조가 파업을 강행할 경우 1조원 가량의 추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사측은 “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작년 약속을 깨고 경영난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는 사측이 구조조정과 분사를 노사합의 없이 추진한 게 파업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대우조선 노사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선업특별고용업종 지정 등을 통해 중재자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노조가 파업카드 꺼내든 이유

지난 14일 대우조선 노조는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파업 찬반 투표를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채권단은 즉각 반발했다. 당초 대우조선을 지원하는 조건 중 하나는 무파업 노조였다. 지난해 노조도 채권단에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채권단은 당초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중 3조원 가량이 집행된 상태다. 만약 노조가 파업을 단행할 경우 1조원에 이르는 빚 탕감은 물거품이 된다.

노조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파업카드를 꺼내둔 이유는 대우조선이 추진 중인 특수선 사업(방산 부문) 분할이 대우조선 매각과 노동자 생존권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채권단에 특수선 사업을 100% 자회사로 분할한 뒤 방산 부문 지분 일부를 매각해 30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사측이 비(非)방산 부문이자 모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을 ‘배드 컴퍼니’로 만들어 청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우조선 노조관계자는 “방위사업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 상 방산사업체는 해외 매각이 불가능하다. 사측이 이를 알고 방산부문만 떼어 낸 것”이라며 “방산을 분할하면 사업 간 시너지 등을 기대할 수 없다. 만약 외국계회사로 대우조선이 팔려갈 경우 대량 해고 사태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노조 쟁의신청 실패...정부, 중재자 역할 해낼까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 움직임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경남지방 노동위원회(지노위)는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지노위 쟁의신청은 합법적 파업을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절차다. 행정지도는 파업 명분이 충분치 않다는 판결이다. 지노위가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을 인정 하지 않으면서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카드는 정당성을 잃게 됐다. 지노위가 인정하지 않은 쟁의는 불법파업으로 간주된다.

대우조선 노조는 단체교섭 등을 근거로 파업을 다시 준비하겠다고 반발했다. 다만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 노조가 실제 파업을 단행할 가능성은 적다고 전망한다. 채권단이 지원을 끊게 돼 사운이 휘청이게 된다면 노동자 생존권이 역으로 흔들릴 수 있는 탓이다.

24일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근무하는 대우조선 노동자는 “현대중공업이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우조선 노조가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는 좋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파업 찬반 투표는) 일종의 신호라고 본다. 노조 수뇌부의 판단이 따로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회사의 생존”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 노조는 24일 오전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열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힘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미로 협박하는 것처럼 추접스러운 것이 없다"며 "어렵게 하루하루 노동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에게 자금 지원 중단이라는 협박을 가하며 일방적 고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조선산업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노조와 회사, 정부 간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업이 지역경제 미치는 파급력이 큰 만큼 정부가 노사 갈등의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오는 30일 조선업에 대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특별연장급여, 구직급여, 재취업 패키지 서비스, 체불임금 청산 등의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한다면 지정 계획 자체를 철회한다는 방침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조선업을 살릴 수는 없더라도 죽일 수 있는 칼은 정부가 쥐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조선산업은 무너질 수 있다”며 “조선업은 고용 등 경제파급력이 크다. 일본도 국영이 조선업을 받쳐주고 있다. 다른 핑계없이 혈세를 들여서라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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