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산업은행 출신 CFO 소환조사…분식회계 고의성 밝히는게 관건

8일 오후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나르고 있다. / 사진=뉴스1

 

기사회생(起死回生)을 노리던 대우조선해양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수주는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분식회계 논란까지 불거졌다. 감사원 조사결과 밝혀진 분식회계 규모만 1조5000억원을 넘어선다.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한 가운데 경영진 비리가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설상가상 노조는 파업까지 예고했다. 본 기획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풀어내야할 산적한 과제들을 짚어보고 업계 및 전문가들의 진단을 담아본다. [편집자주]

대우조선해양에 ‘분식회계 스캔들’이 불거진 건 지난해 5월이다. 신임 정성립 사장이 취임하며 전 경영진 시절의 부실자산을 한 회계연도에 반영하는 이른바 ‘빅배스’(big bath)를 단행, 5조5000억원의 적자를 단번에 털어냈다.

당시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한 2조원대 이상의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한 탓에 적자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외 선박제조 과정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공사손실충당금 등이 손실로 반영됐다는 것이다. 즉, 손실을 감추려는 의도성이 전혀 없었다는 해명이었다.

◇ 의혹에서 현실이 된 ‘손실 감추기’

당시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대우조선의 해명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봤다. 조선업 특성상 선박 건조기간 동안 투입될 비용을 산정하기 쉽지 않다. 시공 중 문제가 발생하거나 설계변경이 단행되면 손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대우조선이 수주했던 해양프로젝트에서 추가적인 손실이 의도치 않게 발생됐다면 수뇌부가 단행한 빅배스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분석이었다. 오히려 향후 대우조선의 투명한 경영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는 긍정적 평가까지 나왔다.

그 후 조선 3사 구조조정 여파에 묻혀있던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논란은 결국 현실이 됐다. 감사원은 15일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우조선이 2013∼2014년 영업이익 기준으로 1조5342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분식회계(window dressing)는 경영진이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현재 부실을 숨기거나 이익규모를 부풀리는 것으로 빅배스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감사원 판단대로라면 지난해 발생한 대우조선 어닝쇼크는 전임 경영진이 저지른 고의적인 손실회피의 결과인 것이다.

대우조선은 2013년 4409억원, 2014년 4711억원의 흑자가 난 것으로 공시한 바 있다. 손실을 감춰 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당시 대우조선 재무제표를 참고하고 투자했던 이들에게 일종의 사기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 KDB산업은행, 책임 피하기 어려워

불똥은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으로 튀었다. 감사원은 산업은행이 부실을 적발할 수 있는 분석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대우조선에 적용하지 않아 부실이 불어났다고 판단했다. 산업은행이 고의적으로 대우조선 부실을 눈감아줬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도 21일 산업은행 출신 김모(61) 전 대우조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분식회계 정황이 드러난 시기(2013~2014년)에 회사의 재무제표 작성·공시 등을 총괄했다.


검찰은 이 시기에 3조원 이상의 분식회계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씨는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이다. 산업은행은 자회사 재무를 관리 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2012~2015년 3년간 대우조선 CFO로 보냈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선 김씨와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 모두 부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금융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재무상태를 읽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외국계 투자사 한 관계자는 “조 단위의 대규모 분식회계는 산업은행 비호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다. 그 기간이 산업은행 출신 CFO가 재직하던 시점이라면 의심에 여지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서 산업은행은 금융업계의 공룡이다. 그들이 권력을 쥘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같은 분식회계를 산업은행 관계자 중 누구도 몰랐다는 것은 무능을 방증한다는 것”이라며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산업은행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밝혀진 분식회계, 빙산의 일각

업계에서는 알려진 대우조선의 분식회계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2006년부터 10년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가 5조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6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했던 프로젝트 전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대우조선의 주력 선박 사업에서 분식회계가 이뤄진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대우조선의 ‘돈 줄’로 꼽히는 400여건의 선박 사업에 집중적인 수사력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구체적인 분식 규모를 밝히기 위해 캐나다 티케이(Teekay)사로부터 2012년 수주한 직분사 추진방식 LNG 운반선 건조 사업, 2010년 튀니지의 국영선사 코투나브(COTUNAV)와 계약한 초호화 페리선 건조 사업 자료 등을 압수했다.

만약 검찰 전언대로 5조원대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우리나라 조선·해양업계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우조선과 상황은 다르지만 공사손실충당금에 따른 부담은 모든 조선사들이 지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조선3사 모두 분식회계 유혹에 취약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민기 회계사는 “기업이 분식회계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입증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빅배스와 분식회계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고의성을 증명해야만 한다”며 “미래의 손실을 예측 반영한다는 특성상 조선사의 분식회계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경영진이 손실을 미리 알고 있었느냐를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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