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협상·협력사 문제로 총수일가 ‘속앓이’...노조 “재벌 3세 이럴 땐 왜 침묵하나”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 사진=뉴스1

 

구조조정과 임금협상 등을 둘러싼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노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각사 총수 일가를 향한 노동자들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대주주인 정몽준 이사장과 정몽구 회장이 대화 창구를 닫은 채 ‘밀실 경영’한다며 총수들을 겨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불똥은 정씨 일가의 3세 경영인들까지 옮겨 붙었다. “경영능력 입증이 끝났다”며 초고속 승진하던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정작 노사문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며, 정씨 일가 전체로 노동자 불만이 번져가고 있다.


◇ 사운 흔들리는 현대중, 노조 “대주주 사재출연해라”

현대중공업은 수주난이 악화되면서 사운이 꺽였다. 저유가 탓에 해양플랜트 발주는 바닥을 기고 있으며 과거 저가수주를 남발한 탓에 유동성은 악화됐다. 결국 글로벌 경기가 풀릴 때까지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를 절감하며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대량 해고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이미 사측이 희망퇴직을 통해 생산직과 사무직의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고 있다. 노조는 “호황기 배당금을 수천억씩 나눠가진 경영진이 정작 위기가 찾아오자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화살은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게 향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5일 노조소식지를 통해 “대주주가 사재출연을 선언하고 현대중공업그룹 자본이 책임을 통감하고 고통분담에 나서면 구조조정 자체가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며 대주주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최근 울산에서 기자와 만나 “사재출연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대주주로서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실권은 사장이 아닌 정몽준에게 있다”며 “인건비만 축소시킨다고 경영난이 해결되나. 대주주로서 사태해결에 그에 맞는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설상가상’ 현대차, 임단협에 유성기업 노조 농성까지

현대차는  임금피크제와 임금인상률을 두고 노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15일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조합원 6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올해 임금협상 투쟁 출정식을 개최했다. 박유기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투쟁사를 통해 "회사는 올해 초부터 임금동결과 임금피크제 확대 시행, 임금체계 개악을 요구했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민주노총, 현대중공업 노조와 연대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양사 노조가 공동 투쟁하는 것은 1993년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 투쟁 이후 처음이다. 노조는 현대가라는 연대성과 국내 최대 노조라는 상징성을 내세워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설상가상 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유성범대위)와 유성기업지회가 현대차를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범대위는 지난 3월 고(故) 한광호 유성기업노동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원청업체인 현대차와 하청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로 인해 한씨가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양사 임직원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범대위는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정 회장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농성하겠다“며 정 회장과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 등 두 회사 임원 7명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현장경험 없는 3세 경영인, 노조 신뢰받기 어려워”

현대가 노사갈등 문제는 총수와 노조를 넘어 3세 경영인들까지 번졌다. 노사문제에서 멀찍이 물러나 있는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을 두고 “차기 수장으로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관계자는 “정기선 전무는 현대중공업그룹 기획실 부실장 등 중요 직책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어렵다고 언론이 연일 보도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회사가 진정 어렵다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정기선 전무가 입장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의 아들인 정기선 전무는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사내 최연소 부장과 상무로 승진했고, 상무가 된지 1년 만에 전무가 됐다. 그룹선박ㆍ해양영업부문을 총괄하며 노사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노조의 공개적인 지탄은 피했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 자택 앞에서까지 농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차기 그룹 수장이 유력한 정 부회장이 노사 문제를 끝까지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관계자는 “총수들이 노사문제에 일일이 개입한다면 실무자들에게 힘이 실리지 못 한다”며 “총수가 조용한데 재벌 3세들이 나설 명분도 없다. 물론 아들로서 아버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면 계속 침묵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 그 정도로 (노사문제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장경험이 부족한 재벌 3세 경영인들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노동자와의 접점이 거의 없는 상태로 고위직에 오르다 보니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쌓지 못해 노사갈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재벌 3세가 경영에 나설 경우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는다. 우리나라 재벌 3세들은 낙하산으로 고위직에 오르다보니 노조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며 “재벌 3세들은 이 기회를 통해서 전문경영인들로부터 노사관계 해법 등을 겸손하게 배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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