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분사 목적 두고 첨예한 대립...전문가 “정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 해야”

 

그래픽=김재일 미술기자

 

국내 조선 대형 3사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스핀오프(사업분리) 카드를 빼들었다. 현대중공업은 설비지원 등 비(非)핵심 업무 분사, 대우조선은 특수선 사업부 분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양사 노조는 “노동자 처우를 떨어뜨리고 국내 조선 경쟁력을 갉아먹는 단발적인 조치”라며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양사가 추진 중인 자구계획도 암초에 부딪힐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조선업계 분사 추진을 두고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한다”며 논의 자체를 금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각사가 추진하는 분사의 방향과 목적이 국내 조선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그려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 재무구조 ‘개선’이냐 ‘개악’이냐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13일부터 이틀 동안 조합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한다. 파업 불씨를 지핀 건 분사계획 등이 포함된 자구안이다. 대우조선 노조는 “특수선 부문 분할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파업 초재기에 들어갔다. 사측이 추진 중인 인력 구조조정과 비사업 부문 분사 계획이 도화선이 됐다. 현대중공업은 9일 설비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정규직 근로자 994명을 분사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노조에 전달했다. 이에 노조는 17일 울산조선소에서 임시대의원회의를 열고 파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양 노조 모두 파업에 대한 여론을 살피는 배수진을 쳤지만, 이 같은 조처가 바로 전면투쟁으로 불거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여론을 모은 뒤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현장인력 공백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추진 중인 적시 선박 인도와 긴축 경영 등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사측은 노조의 파업시도가 회사 경영난을 더 악화시키는 자충수라고 비난한다. 회생을 위한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노조가 동참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13일 현대중공업은 이상용 설비지원 부문장(상무) 명의로 '설비지원부문 가족 여러분께'라는 유인물을 내고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고 경영상황이 나빠지면서 설비지원부문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대중공업 계열 자회사로의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며 "회사가 100% 출자하는 그룹의 자회사로서 현대중공업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조선사 깊어지는 노사 갈등골

노조는 사측이 노동자 동의 없이 일방적인 자구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분사의 경우 노동자의 희생이 담보돼야 하는 문제임에도, 사전 협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노조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회사 설립이 노동자 임금삭감과 고용유연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분사 대상자는 본래 받던 복지혜택과 임금 축소가 불가피한데 사측이 이에 대한 합당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노조원은 퇴사를 강요당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분사를 통해 독립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계열회사로 만들어 인건비와 단체협약이 보장하는 복지를 축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분사 후 2년 정도는 지금 수준의 혜택을 준다 하지만 그 약속은 언제든지 파기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조선 노조는 특수선 사업부문 분할을 추진하는 것은 역으로 그 밖의 사업영역 경쟁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현시한 대우조선 노조위원장은 “거제시의회와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대우조선의 해외매각 통로를 만드는 특수선분할 계획을 반드시 저지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분사 ‘각개전투’ 피해야 모두가 산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추진하는 분사작업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분사는 적자가 쌓인 상황에서 군살을 빼려고 실시되는 것으로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무리하게 사업 통·폐합과 분사 등을 추진할 경우 글로벌 조선사로서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수주가 없다는 이유로 선박건조대를 폐쇄시키고 사업 부문을 조각낼 경우 조선시황이 좋아진 후 사업 시너지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조선 신흥국으로 꼽히는 중국에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조선산업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이를 사양사업으로 간주하고 지원을 줄이고 무리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면 산업 주도권 자체를 영영 찾지 못할 수 있다”며 “해양플랜트 사업 등은 분명 회복되는 시기가 온다. 조선업의 고용력 등을 무시한 채 구조조정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각각 추진하는 분사 방향성이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사 이해관계에 맞는 분사가 우리나라 전체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컨트롤 타워로서 양사의 분사를 총괄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려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는 “조선사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가 많다보니 사측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하고 분사를 즉각적으로 추진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며 “전체적인 산업을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정부가 10년이나 20년 뒤 조선해양산업 미래를 위하는 로드맵을 회사와 같이 그려내야만 위기 극복 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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