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건의 경제 하이라이트


한국은행이 최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1.25%까지 낮췄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한은은 이번 결정에서 세계경제와 실물경제, 물가,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 동향까지 두루 살피고 결정했다고 배경자료를 제시해 설명했다.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건대 금리를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음을 강조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실제 한은은 관련자료 말미에 ‘앞으로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 접근하도록 하는’ 결정이었다고 명시했다. 이번 정책결정이 경기회복과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 유지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은행 금통위가 이번 금리결정에서 아주 중요한 점들을 간과했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게 돈이 돈값을 하는지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수학에선 분모가 영(0)인 분수를 불능이라고 부른다. 변수에 어떤 값을 대입해도 식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현실경제에선 분모가 0까지 가기 전부터 불능에 가까운 문제들이 나타난다. 돈의 값인 금리를 영(0)으로 만들어버리면 돈에서 돈값을 빼앗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의 본질적 기능 가운데 교환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치척도의 기능은 상실한다는 얘기다.

실제 돈값이 0에 가까워지면서 금융기관들의 가치판단 능력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돈을 본래의 기능으로 보지 않고 투기의 수단으로 쓰려는 경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은행들조차 금리가 내려가자 돈이 귀한 줄 모르는 것 같다. 금리가 높을 때는 경쟁적으로 예금을 유치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예금 받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듯한 모습도 보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지난 해 비은행예금기관 수신액은 10.1%나 늘었는데 은행의 예금 잔액은 7.7%만 늘었다. 시중자금이 보험사나 증권사 저축은행 등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서도 이 추세는 계속 이어져 비은행예금기관의 수신액은 4월말 현재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시중 자금이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비정상적으로 흐르거나 특정부문에 과도하게 쏠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 증시에서 주식의 기능은 급격히 위축되고 파생상품이 비대해지고 있다. 또 중장기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단기로 떠도는 시중자금도 급격히 늘어났다.

금융당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증권가의 대표적 파생상품인 ELS와 DLS의 잔액은 5월말 103조원을 넘어섰다. 자산운용사의 초단기 상품인 MMF 잔고는 100조원 대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고 5월말엔 115조원을 넘어서 주식형 펀드 잔액의 1.5배 정도나 됐다.

자금시장 전문가들의 시야가 너무 좁고 불투명하다보니 남아도는 자금이 경제의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기업에 중장기로 투자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단기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신용 세분화 능력을 키우지 못한 때문에 국내 저축은행들은 거의가 일본계 대부업체를 비롯한 고리대금업자들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결국 시중 자금이 남아돌고 초저금리 국면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지만 중금리 대출 혜택을 받지 못한 많은 국민들이 초고금리 대출에 목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잇단 금리인하는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들의 행태도 왜곡시켰다. 특성상 금리인하는 채권 가격 상승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많은 기관들이 채권에 과도하게 자금을 넣었다. 특히 제한된 시장에서 안전성까지 챙긴다며 국공채 시장에 집중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금리인하는 정부부문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자금이 흐르게 만드는 효과까지 초래했다. 또 다른 차원의 크라우딩아웃 효과(정부가 커지면서 민간부문이 위축되는 양상)를 낳은 셈이다.

금리인하로 채권 가격이 상승한다지만 많은 연금생활자들의 수입은 오히려 축소되는 비경제도 벌어지고 있다. 저축해봤자 이자도 제대로 나오지 않다보니 많은 이들이 과열되는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렸고, 이것이 가계자금의 지나친 쏠림을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는 경제의 실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단행한 측면에 적지 않다. 통화량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내렸는지는 몰라도 현재 시중에 돈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도하게 넘치는 자금이 비정상적인 부분으로 흐르는 것을 간과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를 내리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시장을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했다. 현재 한국경제에선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에만 기대지 말고 시장 참여자들 스스로 나서라고 독려해야 했다.

매일 벌어 근근이 먹고사는 이들에겐 이런 돈값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지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먹고사는 게 그들에겐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단계를 들어가 보면 인플레이션이나 돈값의 상실은 그들에게 가장 큰 해를 끼치게 된다.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경제적 약자이다. 중앙은행이 다음 정책에 꼭 반영해야 할 대목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