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직장 떠나…직원을 비용으로만 취급 아쉬워"

현대중공업 생산직으로 올해 희망퇴직을 신청한 전씨를 6일 서울 강남역에서 만났다. / 사진=박성의 기자

 

지난 6일 현충일, 무더운 서울 하늘에 구름이 드리웠다. 흐린 날씨에도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려는 인파가 서울 2호선 지하철 강남역 주변을 메웠다. 오후 7시를 넘긴 시간, 젊은 인파에 섞이지 못한 채 서있는 중년 남성을 만났다. 현대중공업에 희망 퇴직을 신청한 전민기(가명·55)씨였다.

전씨는 온도가 많이 오른 초여름 날씨에도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땀 흘리며 살다가 일을 쉬려니 몸이 적응을 못하더라. 몸살이 났다. 맨날 입는 게 현대중공업 점퍼여서 그런지 마땅히 걸칠 외투 하나 사놓은 게 없더라”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전씨는 조선업계 베테랑이다. 직책은 사무직 부장에 해당하는 기정이다. 울산에서 고교 졸업 후 1980년 현대중공업 생산기술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설계 도면을 보고 절단선을 긋는 마킹(marking)부터 단순 용접까지 현장에서 하는 모든 일을 손으로 익혔다.

그는 군데군데 흉터가 난 자신의 왼손을 보여주며 “50대 치고 멀쩡한 손 가진 남자가 어디 있겠냐만 새삼 요즘 내 손이 자랑스럽더라. 용접 불똥 맞아가며 일했고 손가락 잃을 뻔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이 손으로 부모님 봉양하고 가족도 먹여살렸다”고 말했다.

전씨는 2012년 해양산업이 각광받을 때만 해도 현대중공업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것이라 믿었다. 울산에서 나고 자라 울산 조선소에서 은퇴하기가 그의 꿈이었다. 신문에는 한국 해양플랜트 산업이 세계 최고며 향후 수십조원을 벌어들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전씨는 그 당시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만 해도 해양플랜트는 한국 조선 기술이 워낙 뛰어나 절대 망할 일 없는 분야라 믿었다. 향후 2년간 공사가 꽉 찼다고 하니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하면 대우받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같은 상황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씁쓸히 웃어보였다.
 

울산 방어진 부근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 사진=박성의 기자

 

화수분으로 불리던 해양플랜트는 한국 조선·해양산업을 갉아먹는 독(毒)이 됐다. 해양산업을 독식하던 국내 조선 3사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저가수주를 남발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해양플랜트를 수위에서 이끌던 현대중공업은 2013년 3분기 끝으로 적자 경영을 이어가게 됐다. 2013년 4분기부터 2015년 4분기까지 9분기 동안 쌓인 영업손실액만 4조7800억원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 나스르(NASR) 프로젝트에서 공사손실충당금이 발생했고 제다사우스(Jeddah South), 슈퀘이크(Shuquaiq) 등 해양프로젝트 추가비용이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막대한 손실을 끌어안았다. 조선산업과 달리 해양산업 노하우가 부족해 공정 지연 등이 발생한 탓이다.

여기에 저유가까지 겹치며 해양플랜트 수주는 바닥을 치게 됐다. 가장 바쁜 곳으로 꼽히던 현대중공업 해양2공장(온산공장)은 결국 가동을 중단했다. 도크가 빌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전씨는 “‘철컹철컹’ 거리는 작업장 소리는 일상이었다.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안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참 먹먹하더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월 과장급 이상 직원 1300명을 희망퇴직을 통해 내보냈다. 여기에 올해 5월에는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힘스, 현대E&T 등 조선 관련 5개사 사무직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어 창사 이래 최초로 기장(과장급) 이상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자도 받고 있다. 대상자는 20년 이상 근무한 과장, 차장, 부장급의 기장, 기감, 기정 2100여 명이다. 현대중공업 사정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과장급 이상 사무직에게 최대 40개월 기본급과 자녀학자금 등을 지급한다. 생산직 희망퇴직 조건도 비슷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전씨도 고민 끝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는 “사실 생계가 막막한 것은 아니다. 적은 연봉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퇴직하며 목돈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전씨는 단지 후배들 앞날이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아쉽더라. 나는 나이도 있고 가정도 꾸려냈지만 후배들이 걱정이다. 현장에는 이제 막 결혼한 젊은 직원부터 자녀 4명을 거느린 친구도 있다. 이들에게는 희망퇴직이란 말이 아마 절망퇴직으로 들릴 것이다.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나보다는 이 친구들이 걱정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씨는 퇴직금과 대출을 받아 서울에 작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다만 서울에 올라오고 보니 카페 차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대중공업 경영진이 직원들을 줄여야 할 비용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위기를 대비하지 못했던 경영진이 아쉽다고 했다.

전씨는 “카페 하나 경영하려 해도 돈이 문제가 되는데 대기업은 더 할 것이다. 다만 주인이라면 잘 나갈 때 위기를 대비하는 비상금 쯤은 쟁여놓았어야 한다. 그 정도는 나 같은 용접쟁이들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벌어놓은 돈이 다 어디갔나 싶다. 그때 대비했다면 나 같은 이들이 절반을 줄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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