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직자 생계대책 마련해야...혈세는 경쟁력있는 기업에게만 투입

 

부도위기에 직면한 해운업과 장기불황 늪에 빠진 조선업을 구하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구조조정은 위기에 직면한 기업을 정리하거나 지원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회생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이는 선진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있는 정책이다.

한국은 구조조정을 공적자금과 병행해 산업 육성의 핵심 카드로 활용한 지 오래다. 이번에는 발권력이 있는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하여 부실기업에 자본을 수혈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시점에 미국에서 지난 40년간 굵직하게 진행된 구조조정 사례를 살펴보고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진행된 구조조정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시장경제 종주국 답게 기업간 인수합병(M&A)이 주종을 이룬다. 간혹 공적 자금을 투입한 사례도 있다. 후자인 경우 구제불능(terminal bankruptcy)과 회생가능(survival bankruptcy)으로 양분할 수 있는데 처방이 확연하게 다르다.

1970년대 항공업과 1990년대 철강업 구조조정은 시장 논리에 따라 진행된 대표 사례다. 카터정부는 1979년 항공사들이 비행기요금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항공산업을 활성화해 내수경제를 진작하기 위해서였다. 진입장벽이 없어지자 저가항공사들이 대거 진출했고 티켓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영업마진이 급속도로 축소된 대형 항공사들은 M&A를 통해 이합집산했다. 항공사는 2005년 11개에서 2014년 6개로 줄었다. 구조조정 과정은 험난했지만 혜택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갔고 항공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빈번한 파업으로 항공대란이 지속됐지만 연방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공적 자금을 쓰지 않고 구조조정에 성공한 케이스다.

철강업은 조금 다르다. 군사적 가치로 인식된 미국 철강산업은 1980년대 중반까지 자동차산업과 함께 미국 제조업의 패권을 상징했다. 하지만1980년대 후반부터 저임금을 등에 업고 미국 시장에 진입한 일본, 한국, 중국, 인도 철강업체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철강업체들은 노조의 정치력을 동원해 보호무역 장벽과 공적 자금을 요청했지만 연방정부는 거절했다. 그 결과 9개 종합 철강사들이 퇴출했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특수강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1960년도에 65만 명에 달했던 고용 인원은 현재 15만 명으로 축소됐다. 이 과정에서 연방정부는 공적자금 80억달러를 출자해 ‘연금보장공사(Pension Benefit Guarantee Corporation)’를 설립하고 철강업체가 실직자들에게 보장한 연금을 대납하는 선에서 구조조정을 지원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기업을 회생시킨 사례로는 1979년 크라이슬러에 제공된 구제금융이 대표적이다. 1970년도 중반에 발생한 유가파동으로 일본 소형차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 대형차 생산에 주력했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크라이슬러가 부도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에 의존한 취업자가 25만 명에 육박했고 미국 경제는 극심한 불경기를 겪고 있었다.

연방정부는 크라이슬러 대출보장 법안(Chrysler Corporation Loan Guarantee Act)을 통하여 15억달러에 달하는 조건부 채무보증으로 대응했다. 최고경영자가 교체됐고, 노조는 임금삭감을 수용했다. 채권자들은 부채의 일부를 자본출자했고 일부는 탕감해주었다. 그 결과 크라이슬러는 고정비용을 20억달러나 삭감했고 채무보증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는데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면서 정치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필자와 많은 학생들이 이를 주제로 에세이를 쓸 정도였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하여 크라이슬러는 회생됐고 연방정부는 4년 후 공적 자금을 100% 회수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실을 해결한 케이스로는 1989년 저축은행(Savings & Loan Bank) 사태를 들 수 있다. 저축은행은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데 지역주민들로부터 유치한 예금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주택담보대출하는 소규모 지역은행이다.

영업범위가 제한된 은행들이 부동산 투기를 벌이고 상업용 대출을 실행한 결과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들 저축은행 절반이 부도 처리되면서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들에게 보험금 200억 달러를 지급해야 했다. 공사는 자본 고갈로 문을 닫게 되었다.

연방정부는 금융제도 개혁법안(Financial Institutions Reform, Recovery, and Enforcement Act·FIRREA)을 도입해 관련 제도를 재정비했다. 특별신탁공사(Resolution Trust Corporation·RTC)를 설립하고 공적 자금 1320억달러를 투입해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최근에 공적 자금을 투입한 사례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도입한 부실자산매입 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TARP)을 들 수 있다. 연방정부는 비상경제안정화법안(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으로 확보한 4700억 달러로 부도 위험에 노출된 기업과 차압된 개인주택 등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주목할 점은 제너럴모터스와 크라이슬러에 투입된 800억 달러 구제금융이다. 자동차산업은 신종모델출시에 필요한 자금을 대부분 채권시장에서 조달하는데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자금줄이 막히고 부도위기에 몰렸다. 두 회사 고용인원이 150만명에 육박했다.

연방정부는 조건부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양사는 세제 혜택을 포기하고 경영진은 보너스를 없앴으며 노조는 임금삭감을 수용했다. 연방준비은행의 양적완화와 연방정부의 TARP 프로그램 덕분에 금융시장과 자동차산업도 회복됐다. 2013년 기준으로 공적자금은 100% 회수됐고 총 120억 달러로 집계된 수익은 국고로 환원됐다.

미국에서 진행된 구조조정 사례를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기업 구조조정은 최대한 시장 기능에 맡겼다. 둘째, 공적 자금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에 한해서 투입됐다. 해결책의 전제 조건으로 활용되지 않았다. 셋째, 정부는 실직자를 구제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넷째, 국회가 공적자금 투입의 주체가 되었다. 정부는 필요성을 국회에 제청하고 국회는 특별법안을 통하여 자금규모와 사용용도를 집행기관에게 투명하게 제시했다. 다섯째, 부실기업이 공적자금을 받기위해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선행해야 했다. 여섯째, 연방준비은행은 국채를 매입하는 등 정부정책에 지원은 했지만 공적자금을 직접 조성하고 지분출자하는 형식은 취하지 않았다. 끝으로 공적자금을 집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특별기관은 업무수행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해체됐다.

이런 성공 사례를 현실에 맞게 접목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길 권고한다. 먼저 국회에서 충분한 토론과 입법화가 선행되길 바란다. 공감대와 투명성을 제시해야 한다. 조단위 공적자금투입이 기정사실로 제기되고 있는데 조선업의 경우 기업들이 강도높은 자구책을 실행 중이다. 공적자금 지원이 꼭 필요한지, 모든 부실기업이 다 구제돼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실직자 생계를 지원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혈세투입이 필요하다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제한해 대기업 특혜 논란을 탈피해야 한다. 공적자금은 주인이 없는 돈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자금 회수가 수년안에 가능한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정부 기관이 부실기업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면 한시적이어야 하고 구조조정이라는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한국은행의 역할은 통화정책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중앙은행으로서 우회적으로 지원은 할 수 있어도 통화정책이라는 고유업무 영역을 넘어서는 안된다. 현재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향후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성공리에 추진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