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건의 경제 하이라이트

# 김종인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으로 가면서 새누리당에서 가지고 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행복기금이다.

더민주는 지난 3월 중순 가계부채 해소 공약을 발표하면서 국민행복기금이 목표의 10분의 1 밖에 달성하지 못한 채 금융기관을 위한 채권 추심기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행복기금보다 강도를 높여 연체 채권을 소각하겠다는 총선공약을 내걸었다.

웃기는 건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이 공약이 거의 언론의 관심사 밖에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기자들은 그 공약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다. 그 기사를 쓴 기자들조차 그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료를 베낀 기색이 역력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정책을 빼앗긴 줄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서글픈 심정이 드는 건 불과 3년여 전 국민행복기금을 고사시키다시피 했던 주역 중 한 세력이 바로 기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언론과 정치권의 도마에 올랐다. 당시 국민행복기금이 시행될 때 부담을 안게 될 누군가가 유포한 부정적 견해가 전 언론을 도배했다. 대다수 기자들이 행복기금의 취지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부채탕감이니 도덕적 해이니 하는 주홍글씨를 찍어 난도질을 해댔다. 약자를 위한다는 야당은 그 분위기를 즐기며 수수방관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몸 사리는 데 선수인 공무원들이 목을 내걸고 나설 리 만무했다. 결국 국민행복기금은 출발 단계부터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가계부채 중 가장 큰 골칫거리를 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무디스가 지난 18일 한국 은행권의 신용도를 추가로 떨어뜨릴 수 있다며 부정적전망을 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지난 총선에선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 8명이나 나왔다. 과거에도 정치인으로 신분을 바꾼 언론인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우려될 만큼 많은 기자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당선자 개개인에겐 축하할 일일 것이다. 가뜩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직업을 가진 기자사회 전체로는 새 전직의 문이 열렸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일 수도 있을 게다.

그런데 사회나 국가시스템 차원에서 기자가 정치적 성향을 갖게 되면 적지 않은 폐해를 낳을 수 있다.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편향 시비가 끊이질 않는 기사의 신뢰도를 급격히 떨어뜨려 사회 통합을 해칠 수도 크다.

물론 과거에도 기자란 직업을 정치인이 되는 디딤돌로 삼은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만해도 그런 통로가 크지 않았고, 그래서 그게 기사의 큰 흐름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지 않아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많은 기자가 정치를 하게 되면 언론은 불편부당한 정보의 소통 창구가 아니라 선전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이미 이번 총선을 전후해 심각할 정도로 정보를 왜곡하거나 어떤 의도를 갖고 기사를 내는 사례가 우려할 만큼 늘었다.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기자들의 무관심 때문에 특정 부분이 잘리거나 어떤 정치적 성향 때문에 왜곡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 국민들이 접하는 기사의 많은 부분이 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변질된 것이란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언론계에서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최근 새로운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은 자신이 관리해야 할 언론사가 2000개가 넘는다고 털어놨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사가 쏟아져 나올 가능성은 더더욱 커졌다.

그만큼 한국 국민들은 지금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매일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정보들이 정확한 것인지, 또 필요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게 돼가고 있다.

그만큼 국민 여론이 특정 정보에 의해 호도될 가능성도 커졌다. 정부가 아무리 진실이라고 강조해도 국민들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상황은 원활한 정보의 소통으로 혜택을 보기 보다는 넘치는 정보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험이 더 큰 것 같다. 소위 주류라고 하는 매체들조차 뉴스와 쇼를 뒤섞은 잡탕을 쏟아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사실과 진실을 둘러싼 방향잡기가 점점 더 힘들게 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다. 얽히고설킨 정보의 정글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닥친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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