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 하루 전 사과 코스프레...5년만에 보상 약속

마술사 최현우씨가 지난해 12월29일 마술쇼 '매직컬 더 셜록'을 공연 30분을 앞두고 취소한 바 있다. 전기공급 장치가 고장나면서 공연 진행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일에 화가 났다. 최현우씨와 공연 관계자들은 관객들에게 상황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진심 어린 사과와 환불보상 절차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관계자들은 어린이 고객을 위해 자세를 낮춰 눈을 맞추고 설명했다. 처음엔 화내던 관객들이 하나 둘 상황을 이해하고 오히려 공연관계자들에게 고생이 많다’는 말을 건네며 다독이기까지 했다. 이 사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공연계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피해자들이 그 일로부터 더 이상 힘들지 않을 때까지. 20114월 임산부 7명이 호흡곤란과 폐 섬유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들 중 4명이 원인도 모른 채 숨을 거두었다. 정부가 역학 조사를 벌인 끝에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가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30. 이 중 146명이 사망했다. 시민단체와 피해자 가족들은 신고 접수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신고를 받고 있다.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다. 롯데마트가 느닷없이 18일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와 함께 보상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건 발생 후 5년 만에 나온 사과였다. 롯데마트는 자체브랜드(PB) 상품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200611월부터 20118월까지 판매했다. 정부는 2014년과 지난해 2차례 조사를 벌이고 이 제품의 피해자 현황을 사망자 22명과 생존 환자 39명으로 집계했다. 이 제품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과 애경 가습기메이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냈다. 

 

정부가 이미 2011년 폐 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했지만 관련 업체들은 5년이라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지난해 특별 수사팀이 꾸려지고 검찰 소환이 임박하자 부랴부랴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다. 자사 제품과 피해 사례 간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존중한다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롯데마트는 피해자 배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피해자 가족은 사전에 롯데마트 사과 기자회견을 통보받은 적 없다. 롯데마트가 사과 기자회견을 가진 다음날 검찰은 옥시레킷벤키저 실무자를 소환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업체가 누구에게 사과했는지 의심스럽다. 사과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하는 거다. 처벌이 무서워 검찰 눈치보며 건네는 사과는 흉악하다.   

 

정부 조사, 검찰 수사도, 기업 사과 모두가 늦었다. 정부와 검찰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기업에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기업도 검찰 수사에 충실히 임할 것은 물론 피해자 가족들 앞에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피해 보상과 절차는 그 이후에 협의할 사안이다. 보상금과 의료지원 등 배상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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